잉고 바움가르텐: Just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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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고 바움가르텐: Just Painting

Ingo Baumgarten 

2021. 5. 28 – 7. 10 

Opening: 5. 28 (Fri) 5-7pm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이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갤러리JJ는 도시의 다양한 건축물을 소재로 일상의 미학과 문화를 탐구하는 회화 작가 잉고 바움가르텐 (Ingo Baumgarten)의 전시를 마련하였다. 그는 도시 전경을 이루고 있는 일상적 건물을 특유의 기하학적 구성과 감각적인 톤으로 그려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소박한 미적 요소나 혹은 바쁜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사회문화적 기억을 세심하게 들춰낸다.

독일 출신 작가인 바움가르텐은 독일은 물론 미국, 일본과 중국 등 세계 유수기관의 전시를 통하여 자신의 예술적 입지를 구축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2009년을 기점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건축물에 스며들어 있는 사회 문화적 현상과 분위기를 관찰하고 그것의 시각적 현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로 제시해오고 있다. 주로 서로 다른 공간성과 시간성에서 오는 조형적 특성이나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유희적 감각 등의 요소를 작업에 가져온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일견 아름다운 화면을 구사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경험한 도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작품 속 다양한 구조물들의 부분적 형상은 작가가 바라본 사회적 풍경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다.

이번 전시는 신작을 중심으로 드로잉을 함께 선보이며, 한국의 건축물 외에 독일의 주택가와 지하철을 포함하여 더욱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현재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만드는 건축물의 구조적 기능과 디자인, 사회적 효과와 도시의 분위기에 집중하고 예전에 비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심미적이고 감성적 측면이 더 담겨있다. 건축물은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규정짓는 사회적 구조물이기에 결국 작가의 작업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투영이자 회화적 메타포가 된다. 전시는 우리에게 도시 일상에서의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하며, 작품은 시간을 넘어 우리의 문화적 기억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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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이미지는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공간 모퉁이나 계단, 발코니 등이다. 이것들은 작가가 자신의 일상에서 관찰하고 수집한 이미지들이다. 한 켠에 놓여있던 주변적인 것들, 주목되지 않고 배경으로만 남았던 것들이 그의 작업에서는 주제가 되고 미적 대상이 된다. 그가 포착한 것들을 따라가 보면, 건물 구조나 색채에서 발견되는 혼성적 건축양식과 문화의 충돌에서 오는 이질감과 부조화, 전통과 새로움 사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그러한 것들에 내재된 독특한 미적 감성과 뉘앙스가 있다. 익숙하지만 찬찬히 볼수록 낯선 풍경이다. 즉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 형상 너머의 것을 보려 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주변 사물이나 건축구조물의 부분적 디테일에 보여온 그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94년 포르투갈에서의 실내 사물들을 통한 문화 탐구, 98년 도쿄의 거리 풍경을 관찰한 사진 기록, 그리고 2000년대 전반기의 독일 주택가, 2010년대의 한국 주택에 대한 탐구 등 그간의 행보는 도시 건축과 문화에 관한 그의 작업이 개인의 시각을 넘어 객관적 기록에 도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바움가르텐의 작업은 자신이 경험하는 도시 풍경 속 문화를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특히 일상적인 건물에서 그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특히 그는 도시라는 공간과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인 ‘도시인류학’의 관점으로 건축을 바라본다. 건축물의 형태와 색채는 도시 경관의 형성과 도시 환경이 창출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는 ‘건축물이란 곧 공동체의 정서이자 문화의 집약체로, 나는 그것이 생산하는 풍경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작가는 프랑스와 영국, 일본과 중국 등의 다양한 나라에서 거주하면서 각기 다른 사회 문화와 관습 속에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건축의 형태는 변하고 그 변화에는 연루된 이상과 이념이 있다. 그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집중하였던 이른바 양옥으로 불리던 ‘한국식 주택’ 역시 서구의 모던적 건축 양식에 한국 전통의 양상들이 절충된 형태, 삶의 여건과 방식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요소들이었다. 급속도로 진행되던 산업화와 개발 속에서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주었던 이러한 주택들은 가치가 하락하고 우리의 시야 속에서 그리고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속 현재의 홍대나 인사동 빌딩의 새로운 기능적 디자인이든 서교동의 석양에 물든 오래된 동네 전경이든 그 변화하는 구조적 프레임 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와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물에는-이를테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세련된 모던하우스처럼-유토피아적 희망 또는 안락한 미래에 대한 꿈이 반영되어 있다. 건축물은 인간이 목적을 갖고 형태를 만든 조형물이다. 기둥이나 지붕의 형태들, 세세한 건축 장식에도 사회 고유의 전통과 만들어질 당시의 유행과 기술, 만든 사람들의 욕망과 자본이 투영된다. 들여다보면, 일상 환경의 사소한 부분이나 작은 구석에도 그 이면에 숨은 이러한 문화와 이념, 이와 더불어 감각적이고 미적인 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발견하며, 작업은 사라져가는 건축양식 혹은 우리 삶의 터전과 배경에 관한 일종의 기록이자 기억이 되고 있다.

/painting

화면은 마치 기하추상처럼 직선으로 분할된 엄격한 기하학적 조형성을 띠는 동시에 풍부한 색감으로 다가온다. 수평과 수직의 구도로, 때로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을 사용하여 리듬이 있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구조물의 전체가 아닌 부분을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화면 속 적절한 비례와 각도를 맞춘 확대된 구조물의 일부는 구상적인 대상에서 추상적 요소를 이끌어낸다. 작품은 충분히 평면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한편으로 현실의 모방과는 다른 ‘깊이감’ 있는 구도를 구현하고 있으며, 부분에서 대상 전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제유법 (synecdoche)적 방식을 보인다. 작가의 감각으로 재현된 색채와 함께 이러한 부분적 프레이밍은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을 추상적이고도 낯선 것으로 만든다. 작품 중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타운의 대칭적이고 균형 잡힌 전경이나 베를린의 지하철은 사람이 부재한 텅 빈 공간이 강조되어 고요함이 깃든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것은 석양에 물든 복숭아빛 벽, 혜화동 전경의 그림과 함께 마치 웨스 앤더슨 영화의 배경처럼 마술에 빠진 현실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단순하고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파스텔톤의 색감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은 시간의 감각을 담고 있다. 색채의 표현은 곧 구조물을 통한 빛과 명암의 변화이며 이 요소는 형태와 질감을 동시에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건축물의 형태를 먼저 보지만 그 표면의 채색은 구조적 특성을 강조하고 각 요소의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서양건축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과 석상들은 시간이 흘러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꾸밈없는 흰색이 되었을 뿐 원래는 화려한 색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건축에 있어서 색채의 사용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역시 색은 형태를 강조한다. 빛나는 터키블루 색채를 비롯하여 <분홍과 노랑의 구조들>, <초록과 푸른 집> 등 이번 전시작에는 색에 관한 부제가 많다. 곧은 선으로 구획되어 차갑게 매끈거릴 것만 같은 색면에서는 의외로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다. 그것은 실제의 색이기보다 회화적인 터치이자, 주변의 색과 햇빛에 물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랜 색채의 아련함,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빛은 시간이고 색은 공간이다. 화면을 보면, 색의 관계로서 형태가 강조될 뿐만 아니라 빛과 그림자,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진다. 작업에는 빛의 질감과 촉감이 있다. 그것은 때로 석양의 분위기로, 대상에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빛이 만들어내는 색이자 이웃하는 면끼리 반사되는 빛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할 테지만 또한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지붕 창>, <블라인드 그림자> 역시 빛과 그림자로 인해 더욱 대상의 구조와 리듬이 구체화된다. 여기에 작가의 직관과 미적 감성이 투영되어 색감과 촉감이 결정된다. 작가는 구성과 비례, 색채의 재조합을 통해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에서의 심미적 경험, 미학적 가치를 재고해 본다. 이로 인해 작업은 디테일에 집중하지만 결코 객관적 현실의 묘사 혹은 대상의 즉물적인 표현이기보다 감성적이고 회화적 분위기를 지니게 된다. 사물 혹은 객체를 보는 관습에 거리를 두고 회화적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바움가르텐의 회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것들, 경계의 ‘사이’에 놓인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받쳐주는 것이며, 익숙함 속에서 문득 우리가 사는 세상이 또한 낯설고 비현실적임을 일깨운다.

​​강주연 갤러리JJ 디렉터

원출처 : https://www.galleryjj.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