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개요
기획: 안 해 룡
없어도 있는 동네 / 그대로 고스란히 / 사라져 버린 동네 / 전차는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 화장터만은 잽싸게 / 눌러 앉은 동네 / 누구나 다 알지만 / 지도엔 없고 / 지도에 없으니까 / 일본이 아니고 / 일본이 아니니까 / 사라져도 상관없고 / 아무래도 좋으니 / 마음이 편하다네
자이니치 시인 김시종의 『이카이노시집』 권두시 ‘보이지 않는 동네’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카이노’라는 행정상의 지명은 1973년 2월 1일에 사라졌다. ‘이카이노’는 일본 최대의 조선인 밀집지역을 가르키는 대명사였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이카이노’는 조선인을 연상시키는 기피 지역이었고, 차별의 공간이었다. 옛날에는 이카이츠(猪甘津)라고 불리웠다. 5세기경부터 한반도에서 집단으로 도래한 백제인이 개척했다는 백제향(百済郷)이기도 하다. 1920년대 구다라가와(百済川)을 개수하여 신히라노가와(新平野川, 운하)을 만들 때 공사를 위해서 모였던 조선인이 그대로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제주 출신의 자이니치 사진가 조지현이 촬영한 1960년대의 ‘이카이노’는 바로 이 마지막 ‘이카이노’를 현재에 멈추게 한 정지화(静止画)다. 조지현의 이카이노에는 ‘자이니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으며 떠돌던 청춘의 순진했던 사색과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제주도와 이카이노에서의 기억은 내 사진 표현의 원점이자 모티브와 주제였다. 사진에 담긴 소년들은 그의 분신이고, 어머니들은 가슴 깊이 남아 있던 어머니의 환영이다.
조지현의 담은 60년대의 ‘이카이노’의 조선시장에는 그대로 제주인들의 삶의 숨결이 살아 있다. 60년대는 ‘한일조약’이 체결된 이후 남북의 정치적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다. 일반인의 일상까지도 스며들어 이웃끼리 말도 안 하던 살벌한 조선시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조지현의 사진에는 남북 대립의 격랑 속에서도 순간의 삶을 살아가던 자이니치 역사의 진실들이 담겨 있다.
‘이카이노’의 사진에는 자이니치들의 생활과 연결되는 절대적 빈곤의 세계가 있다. 이카이노의 모습을 인화지에 극명히 남기고 싶다는 의식과 언젠가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의식하면서 조지현은 사진을 찍었다. 조지현의 ‘이카이노’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담아낸 저항정신의 사진적 발현이었다.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했던 한민족 이주사의 한 역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사진가 조지현(1938-2016)
조지현은 1938년 5월 3남2녀의 장남으로서 제주도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신촌리는 김석범의 장편 소설 『화산도』의 무대가 된 인구 약 5000명 정도의 마을. 당시는 전기도 안 들어오던 바닷가 한촌이었다. 10살 때인 1948년 8월 고모를 따라 아버지가 돈벌이를 하고 있던 일본 오사카의 이카이노로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카이노에서 맛본 아이스캔디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후 54년간 인생의 대부분을 이카이노와 그 주변에서 살아왔다. 어머니와 남동생이 살고 있는 고향 제주도에 처음으로 돌아간 건 1989년. 41년만의 귀향이었다. 연극 공연 사진을 시작으로 일본의 차별계급인 ‘부락민’을 기록했고, 한반도 도래인들의 역사를 찾아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다. 2016년 4월에 사망. 사진집으로 『부락』(筑摩書房, 1995) , 『이카이노(猪飼野) _ 추억의 1960년대』(新幹社, 2003), 『아메노히보코(天日槍)와 도래인(渡来人)의 족적』(海鳥社, 2005) 등이 있다.
■ 기획자 안해룡
사진가, 다큐멘타리 감독, 전시 기획자, 출판 편집자 등 텍스트와 사진, 영상, 텍스트를 넘나들면서 작품을 만들고있다. 1995 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에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기록 작업을 했다. 현재는 일본에 있는 재일 코리안의 이주사, 조선인이 관련된 일본의 전쟁 유적을 테마로 사진과 영상으로 작업하고 있다.
– 영화로는 일본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다큐멘타리 <나의 마음은지지 않았다 My Heart Is Not Broken Yet> 세월 호 참사에 관한 다큐멘타리 <다이빙 벨 Diving Bell>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