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6-2019-10-08
김천수
■ 전시 개요
<알프스(Alps)>는 사진가 김천수의 개인전으로, 강원도 진부령에 위치한 알프스 리조트에 주목한 작업들로 구성된다. 2013년 작가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알프스 리조트를 찾아갔지만 이미 수년 전에 폐장한 상태였다. 그 곳은 1970년 리조트 개장 당시 만들어진 시설부터 80-90년대 증축된 건축물, 2000년대 개보수가 이루어진 부분 등 다양한 시대의 유산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최근 리조트의 재 운영을 위한 계획과 시도가 여러 차례 무산되는 과정에서 쌓인 흔적들까지 더해졌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오랜 기간 주시하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수집한 알프스 리조트 개발 당시의 모습이 담긴 자료사진들 또한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 전시 서문
거대한 리조트의 유적으로 들어서는 공허한 터는 드문 인적 탓에 풀들로 가득 차있다. 급작스런 방문자의 발걸음과 누군가의 경계심으로 남아있는 개들의 울음소리만이 폐허를 울린다. 터의 크기를 그러보고자 고개를 든다. 한 때는 슬로프였던 산맥들 사이로 리조트의 정체된 시간을 알리는 시계탑이 비죽이 솟아있다. 탑의 정지된 시침을 이정표로 삼아 웃자란 풀을 헤치고 들어가면, 우리는 묘한 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건물의 집기들과 스키용품들이 잘 보존된 미라처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때늦은 손님의 지각을 알린다.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버린 천장, 흔적만을 안고 있는 벽은 흘러간 시간을 가리킨다. 반면 언제라도 작업이 재개될 것만 같이 놓인 자재들, 비교적 건재한 외벽과 최근 도색되어 홀로 번쩍이는 리프트는 도래할 시간을 지시하는 듯하다. 우리는 폐허 안에서, 현재로 소환되는 지나간 시간과 후일을 위해 정체된, 어떤 사진적인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폐허는 작가에 의해 다시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폐허 안에서 마주한 중첩된 시간이 그러하듯, 폐허를 찍은 사진은 우리에게 혼란을 가중시킨다. 전시장 내에서 작가가 기록한 리조트의 사진과 리조트 내에서 발굴된 사진들이 뒤섞여 혼동을 자아내듯이 말이다. 폐허의 사진은 앞선 과거를 소환하고 있는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일이자 이 소환을 미래까지 연장하는 일인가? 혹은 사진과 같은 폐허를 사진으로 찍는, 다시 말해 ‘기록의 기록’인가?
물론 폐허가 작가의 기억을 통해 그를 불러들였듯, 우리는 작가가 기록한 이 무너진/무너져가는 이미지들 속에서 사적인 과거들을 소환할 수도 있다. 예컨대 호황기의 알프스 스키장을 직접 누벼보았거나 혹은 유사한 시기에 생겨났던 스키장에 대한 느슨한 연결을 갖은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혹은 기억이 없더라도 폐허는 기시감으로서의 과거를 불러온다. 정확하게는 없었지만 주변으로부터 들었거나 보았던 혹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시대적 상징으로 남아있는, 나의 기억으로 욕망되려 하는 과거다. 그러나 동시에 리조트의 이국적인 명칭과 건물들의 혼종적인 외벽 장식들이 배태한 거리감은 시간축의 상이한 방향들을 가리킨다. 그 방향에는 ‘알프스 리조트’가 대규모로 확장되었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적 정점에서 상정되었던 유토피아적 도달점으로서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다. 이 ‘미래’는 IMF라는 굴곡점을 지난 이후, 일종의 정체기로 여겨지는 현재에도 도달해야할 지향점으로 되돌아와 있다. ‘알프스’와 같은 구체적인 지명으로는 아니지만, 여전히 국내 대부분 휴양지의 이름에는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유사 외래어가 접두사처럼 붙어 미래적인 과거의 욕망을 반증한다. 결국 ‘알프스 리조트’에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은 미래적 과거와 어렴풋이 있었던 것만 같지만 여전히 도달하고픈 과거적 미래가 혼재된 시간이, 즉 ‘폐허적’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폐허를,
중첩된 시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진은 폐허를 과거-현재-미래 중 어떤 부분으로 정확하게 ‘정지’시켜둘 수
있는가? 작품들에서 우리는 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예시는 <알프스 #11>,
<알프스 #42>, <알프스 #49>일 것이다. 각 작품들 속 이미지는 알프스 스키장 로비의 벽에 새겨진 한
사진의 일부로, 근 50년간 스키장으로서의 흥망의 슬로프를 오르내리다 마침내 한 사업가의 손에서 재탄생되었던 ‘알프스 리조트’의
호황기를 펼쳐 놓는다.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벽의 거대한 크기를 미루어봤을 때, 벽의 사진 이미지는 스키장의 번영이 찰나에
그치지 않고 무한히 연장되길 바라는 기원이기도 했을 테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에 마침내 도달한 방문자에게 폐허 속에서의 사진은
리조트의 짙은 패색 한 가운데에서 과거의 흐릿한 빛만을 던질 뿐이다. 하지만 폐허 속 사진이 아닌 사진 속 폐허는 우리에게
되감기거나 멈췄거나 또는 재생되는 중첩된 시간 감각을 전달한다. 사진의 표면을 장악한 흰 반점들은 풍화의 흔적이거나 혹은
내려앉은/을 눈발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그곳에 이미 없지만, 멈춰진 스키장을 다시 채운/울 방문자들이다. 휘황한 건물들은 이미
창틀만 남아 스러져 가는 흉물이거나 혹은 곧 완공되어 행락을 제공한/할 안식처다. 결국 사진을 통해 ‘폐허’의 시제는 그때이자
지금 그리고 언제인가로서 이리저리 뒤섞인 것임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나아가 폐허를 ‘사진 찍는 것’ 역시 특수한 시공간의 편린을
정지시키는 일이 아니다. 폐허 사진은 그보다는 어떤 시제나 방향성으로 정확히 소급될 수 없는 ‘폐허적’ 시간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이 사진(술)에 각인되어있다는 것을 알린다. 그간 작가의 작품들이, 우리 사회의 오류 지점을 디지털 사진이 기반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우연적 오류를 통해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류적’ 사회와 그 징후들이 디지털 사진(술)에 기입되어 있음을 짚어내는
일이었듯 말이다.
곽노원 (독립큐레이터, 불량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