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 드 제주 – 세 개의 서정
제주라는 지역의 미술은 바야흐로 격변기를 맞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이른바 386세대(지금은 586세대가 되었다고 한다)들은 중견작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30~40대의 젊은 작가들이 유연하면서도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는 가운데 외부적으로는 수많은 작가들이 정착 또는 레지던시의 형태로 입도해 들어오고 있다.
전후의 혼란 속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화가들이 활동했던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를 연상시킬 만큼 나날이 다양성과 개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른바 에꼴 드 제주(제주파)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제주라는 지역(로컬)의 정체성은 유례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서정성이다. 예술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감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나는 감히 그것을 서정이라 말하고 싶다. 서정성은 장르를 막론하고 어떠한 내용, 형식보다 그 앞에 선다. 전시에 초대된 3인의 작가들은 각자 매우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공통적으로 작품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이옥문 작가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50년 동안 줄곧 제주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으며, 박길주 작가는 결혼이라는 계기로 제주살이를 시작한지 15년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문성윤 작가는 4~5년 전부터 제주도를 들락날락거리던 중 작년부터는 제주에 머물며 활동하고 있다. 제주라는 공간(空間)을 각자 다른 시간(時間)으로 공유한 작가들이 바라본 제주의 서정은 어떤 것일까. 또한 그것은 작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는가. 에꼴 드 제주(제주파) 이옥문, 박길주, 문성윤 작가가 펼쳐놓은 세 개의 서정을 기당미술관에서 함께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