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과 Dust 사이에서, 사진의 고민과 쓰임
– 한기애 사진전 <Fine Dust>, 3월 24일부터 류가헌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마치 찍고자 하는 피사체의 특정 부분만 포커스를 맞춘 것처럼 일부는 선명하고 나머지는 희부윰하다. ‘북한산’ 사진을 예로 보자면, 최고봉인 보현봉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성한 초록 숲에 뒤덮여 솟은 반면, 양 옆으로 흐르는 능선들과 산 아래 마을들은 잿빛에 가려져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광화문’의 경우는, 유명한 유적지나 건물의 개ㆍ보수 현장 앞에 사진 가림막을 세우고 다시 사진으로 담아낸 형식을 연상시킨다.
사진가 한기애의 사진 시리즈 <Fine Dust>. 시리즈의 제목은 이 작업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Fine Dust’는 미세먼지라는 뜻이다. 작가는 동일한 대상 혹은 장소를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맑은 날과 미세먼지가 심하게 덮인 날을 선택해서, 같은 위치에서 같은 포맷으로 촬영하였다. 이후 미세먼지로 뒤덮인 장면을 배경으로 두고 그 위에 맑게 갠 날을 부분적으로 겹치는 형식으로 마무리했다.
‘마무리 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Fine Dust>는 사진 그 자체로서 마무리되기 위한 사진이 아니다. 작가는 이 사진들이 산업시대의 기록으로서 뿐만 아니라, 환경변화에 대한 위기를 공감하고 행동변화를 이끄는 ‘쓰임’이기를 바란다. 작가가 정통적인 사진의 화법을 탈피해서 두 장의 사진을 레이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그 이유다.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표현방식이라 여긴 것이다. 산업 환경에 의한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로 문제제기를 한 국내 작업이 드문 현실에서, 한기애의 <Fine Dust>는 주목할 만한 작업이다.
대척점에 있는 두 개의 사진이 한 장의 <Fine Dust>를 이룬 것처럼, 영어 제목인 Fine Dust가 서로 대립각을 이루는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절묘하다. Fine은 Dust와 함께 쓰이면 ‘미세’로 해석되지만, 그 자체로는 ‘좋은’ ‘맑게 갠’ 날을 뜻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장소의 ‘맑게 갠’ 풍경과 ‘미세먼지가 낀’ 풍경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임으로써, <Fine Dust>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명약관화하게 드러내 보인다.
특히 서울 광화문, 북한산, 올림픽공원 조각상, 잠실 롯데타워, 서산 간월암 등 사진 속의 장소들은 모두 명승지로 알려져 있거나 랜드 마크가 있는 곳들이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 매우 익숙하게 자리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되는 장소들이 미세먼지에 점령당한 모습은 미세먼지농도 높은 날의 대기처럼 보는 이를 갑갑하게 하며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사유케 한다.
앞으로도 <Fine Dust>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대기오염이 과거의 일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나의 작업이 이 시대의 지표이자 흔적으로서 남길 바란다.” 라고.
문의 : 720-2010
작가 소개
한기애
1985.2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2015.2 중앙대 산업교육원 사진학과 졸업
2020 현재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학과 석사과정 중
개인전
2018 <해방해빙II> 광화랑
2017 <해방해빙I> 공간291
그룹전
2019 <포스트포토 2019> 토포하우스
2019 <포토루덴스 2019> 삼탄아트마인
2018 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 사진아카이브 프로젝트-남양주시 파트
2017 <서울, 오늘을 찍다> 서울혁신파크
2017 <포스트포토 2017> 토포하우스
2016 <경기아카이브-남양주> 공간291
2016 <서울, 오늘을 찍다> 서울혁신파크
2015 <경기아카이브-성남> 공간291,
2014 서울사진축제 공원사진관; 기념의 기념(서대문독립공원)
2014 <경기아카이브-파주> 공간 291
2013 <경기아카이브-화성> 공간 291
작가 노트
<Fine Dust(미세먼지)> 작가노트
인간은 자연을 투쟁의 도구이자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인간이 이 지구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대하는 대신
지구에 순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존 가능성은 조금 높아질 것이다.
-E. B. 화이트
2015년 겨울 한강변을 지나다가 짙은 먼지로 덮인 강변 풍경을 보고 <Fine Dust>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몽환적인 안개의 모습을 하고 숨어 있었지만 숨을 쉴 때마다 공중에 먼지로 날아다니는 산업 폐기물들이다. 이것들은 걸러지지 않고 인체에 축적되어 건강을 위협한다. 인간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더럽힌다. 그리고 그 더러워진 자연을 또 소비하며 살아간다. 생수를 사서 마시고 공기청정기를 집안에 들여도 자연을 훼손한 대가를 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굴복시키며 신(神)인 양 우쭐대도 결국 인간은 먹이 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물질을 과잉 소비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다른 종들을 멸하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멸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Fine Dust>시리즈는 산업 환경에 의한 지구생태계와 지형의 변화를 밀도있게 다룬 사진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나 크리스 조던과 같은 작업 연장선에 있다. 다만 작업 대상과 지역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가 처한 환경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확산하고 이에 대한 공감과 행동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생각을 공유한다. E. B. 화이트의 말처럼 인간이 지구에 순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여 우리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길 바란다.
이번에 발표되는 작품들은 두 개의 사진을 레이어한 사진들이다.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맑은 날과 미세먼지가 심하게 덮인 날을 선택하여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맷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두 사진을 겹쳐 맑은 날을 일부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런 방식이 사진적 문법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나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선택된 장소들은 명승지로 알려져 있거나 랜드마크가 있는 곳들이다. 즉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매우 익숙하게 아름답게 인지된 곳들이다. 이곳이 어떻게 미세먼지로 점령당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업에서 보여준 사진적 행위는 산업 시대의 인덱스를 남기려는 시도이며, 예술의 효용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영국이 1952년에 12,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Great smog로 대기청정법을 만들어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여 대기오염에서 벗어났듯이 우리나라도 현재의 대기오염이 과거의 일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나의 작업이 이 시대의 지표이자 흔적으로서 남길 바란다.
_ 한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