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m MinJeong: 바람의 자리 Hues of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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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Novemebr – 20 December2020
SPACE SO

심장의 심정心情을 기억하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방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빛과 어둠, 그 사이 경계선을 바라본다.
어둠은 감각을 깨우는 공포이기도 하지만, 자궁처럼 안락한 도피처이다. 틈 사이로 빛이 보인다. 순간 동그랗게 웅크린 상상이라는 탯줄이 공간과 이어지고, 창문의 숨결과 벽의 일렁거림이 말을 건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덩어리가 되어 현재에 돌팔매질을 하는 것 같다.”

금민정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날,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노라가 집을 떠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그 감상을 내 작은 노트에 위와 같이 기록했었다. 단정하고 정제된 영상,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 감정이 담긴 작품들이 차갑다. 마치 고딕호러 영화 속 집이 물체가 아닌 유기체인 것처럼, 일렁이는 문과 벽의 잔상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내게 빗금이 난 복도 혹은 앞서 낯선 발자국이 찍힌 길처럼 호기심에 따라가 보게 되는 예술가였고 그 작품은 내게 완전히 집을 떠난 것은 아닌, 노라의 여정을 따르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이번에도 그 길을 따라가 본다.

국내 레지던시 입주 기간에 금민정의 작품과 그 창작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보았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대만 단수이의 세관원 숙소, 서대문형무소의 격벽장 등에서 받은 영감을 직조하고 있었다. 근대 식민주의 잔재가 남겨진 공간에서 작가의 숨이 가빠진다. 그의 비디오 조각들 속에 ‘사람’의 형상 혹은 사람의 움직임과 그 지표가 담긴 시기였다. 어쩌면 내가 모르던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놀라움, 공간에 새겨진 기억과 사라졌기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레지던시에서 만난 동료 예술가들과의 소통이 어우러진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빼어난 무용수 혹은 안무가들과의 협업으로 금민정의 영상에 땀방울과 체온이 담긴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과 음성을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춤의 즉물성과 철학에 가까운 상징을 만난다. 당시 무용수의 움직임은 좌표 값이 되어 작품 (2014) 속에 오롯이 새겨졌다. 피사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을 통해 기억의 체온이 오른다. 그리고 나 자신도 풀어보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불가해한 것들을 고민하면서, 금민정은 타인에게 공감하는 방식 대신, 타인의 감정을 지표로 받아들여 움직임으로 전환시킨 후 그것을 시각화한다.

전시 (2017)와 전시 (2019)를 통해 금민정은 숲과 자연이라는 확장된 공간에서 사람이 담긴 자연, 혹은 자연 그 자체인 사람을 만난다. 집을 떠나, 역사적 공간으로, 화전민의 삶 속으로, 그 삶이 담긴 숲으로, 숲을 간직한 여행지로 확장된 여정을 거쳐 이번 전시 <바람의 자리 Hues of the wind>(2020)가 머무는 곳은 한옥이다. 바람의 숨결을 품고 길을 따라 걸으며 타인의 삶을 탐구한다. 그리고 타인을 담은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다시 돌려놓는다. 그렇게 공간에 남은 타인의 감정感情을 감정鑑定한 후, 그 공간에 남은 기억들을 오롯이 자신의 감정값으로 투사하는 이번 전시에서, 영상은 괴괴한 경계 사이의 말들을 들려준다. 금민정의 작품 앞에 멈춰 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주 찬찬하게 자신의 심정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다. 하나의 심장을 가진 다양한 심정이 급변하진 않지만, 그 표정이 매번 깊어진다. 일렁거리던 오롯한 내면의 이야기를 잠시 묻고, 바람이 흐른 자리 위에 선 작가는 외부의 것들과 더 속살거리며 가까이 대화하는 것 같다. 나이테를 남긴 채 생명을 잃은 나무가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집이나 조각이 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물체가 되는 것처럼 금민정의 작품은 타인의 이야기와 그 기억으로 나이테를 두르며 굵어지고 단단해진다.

금민정의 전시 <바람의 자리>(2020)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길, 집의 길과 그 기억은, 소동처럼 찾아왔다 이내 잔잔해지는 바람 같다고 느끼게 된다. 한옥의 대들보 부분에 모니터를 연결한 <바람을 그리다>라는 작품은 마치 바람이 한지에 자신의 몸을 부비며 말을 거는 것 같은 작품이다. <바람을 짓다>라는 비디오 조각은 ‘위로받고 위로하다’는 감정값에 반응하고, ‘공간에 누워 느끼는 자유로운 마음을 반응’시킨 두 개의 영상을 한때 한옥의 일부였던 나무 조각에 심은 작품이다. <담 넘어, 12개의 풍경>이라는 작품은 마음의 소란을 감각으로 느끼게 만든다. 후회, 냉정, 아련, 몽환, 답답, 경멸, 미움, 회한, 환의, 경탄, 수치, 욕망, 대담이라는 금민정 작가의 감정값을 알고리즘화하여 풍경에 반응시켜 만들었다.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을 앞서 듣지 않아도 영상 앞에 서면 월컹대는 감정의 소동을 느끼게 된다. 이미 그의 작품이 작가 내면의 개인적 고백에서 관객과의 심정적 교감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민정은 “저에게 빛 덩어리인 비디오라는 매체는 스스로 넘어서야 할 물성입니다. 때론 그것이 가진 사각프레임을 흩뜨리고 싶고, 구겨버리고 싶고, 그것들을 포개어서 그것들의 발광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조각은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실체이지만, 영상은 심장의 역할을 하는 모니터 혹은 프로젝터가 필요한 무형의 것이다. 촘촘한 픽셀과 픽셀 사이를 잇는 빛이 없다면 온전한 기억을 환기시키기 어렵다. 실제로 2009년작 <뒤틀린 방>의 화면 속 공간은 뒤틀려 있지만, 방을 담아내는 전시장의 벽면은 오롯이 정사각형일 수밖에 없었다. 금민정은 이후 사각 프레임을 둘러싼 조형물을 구성하고 변형하면서 모니터의 한계를 지워보려 한다. 실제로 2013년의 <뒤틀린 방>은 LED 조명박스 속에 프레임을 켜켜이 쌓아 평면의 한계를 지웠다. 그리고 최근 작품들을 통해 금민정은 영상에 심정을 담는다. 이전에는 기록되는 역사와 역사 속의 기억을 담았다면, 지금은 공간에 오롯이 남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그 기억에 담긴 표정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금민정은 작품으로 길을 만들어 마음의 자리가 새겨진 지도를 만드는 중이다. <바람의 자리>(2020)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두 발이 내딛은 길 위로 자신의 심장과 사람들의 심정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숨을 쉰다는 것, 심장이 뛴다는 것, 생명체는 혈류처럼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것, 바람조차도 계속 흐른다는 것을 관객들은 마치 길 위에 선 것처럼 느끼게 된다.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 감정의 차가운 기록을 넘어, 각각의 감정들이 일렁이고 출렁이며 만들어내는 삶의 불가피한 다채로움과 그 찬란함의 곁에 머문다. 그날 바람의 기억이 환기시킨 감정의 곁에 볕이 든다. 뜨거운 빛은 아니지만, 차갑고 시린 목덜미를 향한 은은한 볕이다. 순간 프로젝터의 심장과 모니터의 빛을 빌려야 하는 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한다. 잠시 호흡이 가빠졌다 이내 안도감이 찾아온다. 볕에 곁을 둔 예술과의 만남.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할 거라 상상하고 있었다고 기억해 낸다.

 원출처 : http://spaceso.kr/archives/project/guem-minjeong-hues-of-the-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