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1933년) 조사 이후 잊혀졌던 29호분 실체 확인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와 공주시(시장 김정섭)는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지난 3월 19일 개최한 고유제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되었지만 그 현황과 위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29호분을 발굴조사해 그 규모가 왕릉급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발굴현장: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51번지 일원(29호분)
백제 웅진기 왕릉원으로 알려진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에는 현재 무령왕릉을 포함한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지만, 기존 조사에 따르면 그보다 많은 수의 고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조사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추진 중인「백제문화권 핵심유적 중장기 조사연구 계획(2021.2.)」의 하나로 진행하는 공주 송산리고분군 학술조사의 첫 발굴조사로, 29호분을 포함한 남쪽으로 넓게 뻗어 내린 정비구간을 대상지역으로 하였다.
조사 결과, 6호분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29호분을 확인하였다. 29호분은 천장을 비롯한 상부가 모두 유실된 상태였지만 하부는 잘 남아 있었다.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과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橫穴式石室墓)이다. 현실의 규모는 남북 길이 340~350㎝, 동서 길이 200~260㎝로 상당히 큰 편인데, 이는 송산리 1~4호분과 유사한 규모일 뿐 아니라 전실분(塼室墳)인 6호분보다도 큰 규모여서 왕릉급으로 추정된다.
현실은 깬돌(할석)을 쌓아 축조한 후 내면에 회를 칠하여 정연하게 마무리하였다. 바닥은 벽돌을 사선방향으로 깔았는데, 이러한 방식은 무령왕릉과 송산리고분군 6호분과 같은 구조다. 바닥에는 벽돌로 축조한 관대(棺臺) 2매가 확인되었는데, 동쪽의 관대(길이 약 250㎝)가 서쪽의 관대(길이 약 170㎝)보다 큰 편이다. 현실의 입구는 벽돌을 여러 단 쌓아서 폐쇄하였다. 연도는 현실의 동쪽에 치우쳐 축조하였는데, 연도 바닥도 현실과 같이 벽돌을 깔아 시설하였다. 묘도는 대부분 유실되어 약 2.7m만 남아 있는데, 묘도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벽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배수로가 일부 확인되었다.
*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
*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
* 관대(棺臺): 무덤 안에 관을 얹어 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
29호분은 석실 구조라는 점에서 1~5호분과 같은 양식이지만, 바닥과 관대에 벽돌을 사용한 점에서 전실(塼室)인 무령왕릉과 6호분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송산리고분군 내 고분들의 축조 순서와 위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앞으로 남은 복원과 정비를 고려하여 디지털로 기록화했으며, 가상현실(VR) 제작을 위해 영상 촬영을 했으며, 유실된 상부를 향후 복원하기 위한 3차원 입체(3D) 유형화(모델링)도 시행하였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번 29호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잊혀진 고분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백제 왕릉원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고자 한다. 또한, 백제 웅진기 왕릉의 상장례(喪葬禮) 복원을 위한 조사·연구와 함께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현장 설명회를 백제문화유산주간(7.8.~7.14.)에 개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