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개인전 : 청주-일곱 마을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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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6년 10월 14일 ~ 2016년 11월 1일

전시장소 : 스페이스22,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빌딩 22층

청주- 일곱 마을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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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부터 2016년 초 까지 내가 카메라를 들고 돌아본 청주는 일곱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마을들은 성안골, 시장들, 무심천, 오래된 청주공단과 오창과 오송, 미천리와 두모리, 수암골, 상당산성과 청주 근처의 유원지이다. 물론 청주가 이 일곱 개의 마을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리 없지만 나는 청주가 가진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그렇게 나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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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청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잘 알려진 수암골과 20년전 보았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에 대한 기억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와 본 가로수 길은 예전의 그 길이 아니었다. 차츰 청주를 알아갈 수록 내가 느낀 것은 도무지 모르겠다였다. 청주는 행정 구역상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도시로 보이지 않았다.
청주는 중간 규모의 다른 지방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시대부터 이전부터 시작되는 오랜 역사, 그 이후의 변화, 신시가지와 도시의 확장 방식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최근에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청주는 더욱 커졌다. 청주는 확장 과정에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중층적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청주는 여러 층위를 가진 도시였다. 오래된 구도심은 여전히 도심지 역할을 하지만 거기를 조금만 벗어나면 청주의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간다. 농촌 마을들과 최근에 형성된 고속 터미널 부근의 신시가지, 구 공단과 오송, 오창의 새 공단은 서로 다른 시간축에 있었다. 공간도 다르지 않았다. 건물의 밀도, 부의 축적 정도, 인구 분포 등의 사회과학적 데이터를 들지 않아도 이름은 청주라고 불리지만 완전한 전통 농촌 마을들에서부터 첨단 공단에 도시에 이르는 공간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었다. 공간과 시간을 축으로 하는 두 개의 스펙트럼은 서로 겹치면서 청주의 중층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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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청주를 어떤 시선에서 보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난망해보였다. 우선 카메라를 들고 청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체적으로 체험해보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청주라는 도시를 한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계의 어느 도시라도 모두 생성과 성장과 소멸을 겪는다. 청주는 성장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역사는 오래 되었고 지역의 중심이지만 흔히 말하는 압축 성장의 태풍에서 살짝 비켜서있었다. 때문에 60년대에 만들어진 공단 이후 새로운 공단이 들어서고 산업의 변화가 시도 된 것도 거의 21세기에 이르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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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린 변화 속도는 청주를 사진적으로 흥미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피난민들이 주로 정착했던 수암골이 그런 경우이다. 이는 부산의 산동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에 의해 알려진 뒤 급격한 변모는 놀라운 것이었다. 구도심이 잘 보이는, 도청과 시청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은 전망이 탁월하다. 그러나 수암골에 들어선 수많은 까페들은 수암골과 무관하다. 수암골의 지명도, 위치등에 기생하는 부동산 투기와 한국식 관광 투자의 한 전형인 것이다. 나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아주 익숙해져 당연한 일이니까.
상당구 문의면의 경우도 그렇다. 문의 마을로 알려진 미천리는 전부는 아니지만 새로 조성된 면 단위 고을이다. 1983년 대청호가 형성 되면서 수몰된 마을이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 관광 단지가 만들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지 벌써 삼십여년 지나면서 미천리는 원래 그곳에 있던 마을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 그것은 면 단위 소도시의 한가한, 그러나 뭔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가까운 청남대도 예사롭지 않다. 내 전두환의 별장에서 시작해서 개방된 관광지가 된 내력에는 권력의 변화와 부침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통령의 침소인 건물은 기이한 권위를, 옆의 비어 있는 풀장은 공허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6-70년대에 조성된 이제는 아파트 촌으로 재개발 되고 있는 옛 공단은 퇴락하고 있다. 아직 도자기, 반도체, 화학, 화장품 등의 공장들이 성업 중이기는 하나 오창과 오송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공단 관리처의 옥상에 가면 그 풍경들이 보인다. 시간이 뒤섞이고 극히 현대적인 건물과 시설등이 오래된 공장, 부대 시설들과 충돌한다. 그리고 오창과 오송은 새로운 공단 도시가 갖는 공허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분위기가 있다. 호수와 잔디밭과 빈터에 핀 개양비귀의 색깔들은 기이하기 조차 하다.
두모리는 어떨까.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 변화가 더딘 그곳은 퇴락중이다. 적어도 번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마을 왼편의 야산에서 보는 경관은 우리나라 전형적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길들은 예스럽고, 빈집이 듬성듬성 서있다. 노인네들은 마을 입구 나무 그늘에 앉아 가뭄을 걱정했다. 상당산성의 성안 마을은 완벽한 관광지다. 애초의 기능이 사라진 이 전쟁용 방어시설은 산책 코스가 되었다. 시간은 죽음과 전쟁의 공간을 놀이와 휴식의 공간으로 전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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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사진들은 청주의 정체성에 대한 제안이나 답이 아니다. 내가 하려 했던 것은 청주의 일상적인 삶 혹은 경관 속에 드러나는 아이러니, 아름다움, 익숙한 낯설음에 관해서였다. 나는 두모리의 늦은 여름 대낮과 무심천의 벚꽃과, 수암골의 가을을 사랑했다. 쑥스럽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번화가인 성안길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진 육거리 시장길,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끊임없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시장 아주머니와 밥집들을. 모두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플라터너스 가로수길은 너무 변해서 별로 찍고 싶지 않았다.청주의 모든 경관은 그곳 사람들의 삶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내 사진은 그 삶에 대한 어떤 기록이기도 하다. 사진전의 구성은 일종의 청주에 대한 개인적인 투어의 기록으로 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 투어, 청주에 대한 사진은 청주의 것만은 아니다. 사실 이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모든 지방도시에 해당되는 상황이다. 군이나 읍 단위 정도의 마을에만 가도 우리는 서울의 일부를 살짝 잘못 떼어다 놓은 듯 한 중심가를 만나고, 논바닥에 선 아파트와 커다란 간판이 결사적인 식당들을 만난다. 모든 곳이 서울의 기이한 축소판 같은 도시들과, 그 도시들에 들어선 대자본이 투여된 가게들을 본다. 패스트푸드, 옷 가게, 전자제품, 보험회사, 자동차 판매점, 휴대폰 가게…. 등등을. 이는 물론 인문지리학에서 말하는 장소성을 지우는 그런 난폭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자본, 돈과 권력이 흘러간 흔적이며 장소성이라기 보다는 주변부 자본성이라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즉 자본은 장소성과 장소 애착을 선택적으로 지우고 도시는 그 결과물인 것이다. 청주도 물론 다르지 않다.
사진이란 그 결과물에 대한 희미한 흔적 외에 다른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 흔적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므로 내가 찍은 사진들은 청주의 지금에 대한 사진이 아니라 사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진일지도 모른다.

 

원출처 : http://www.artbava.com/exhibit/detail/4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