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곤 사진전-그리움을 찾아서-2017. 4. 14. ~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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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움을 찾아서
일자 : 2017. 4. 14. ~ 4. 30
장소 : 사진공간 배다리 2관 차이나타운전시장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9-6 카페 헤이루체)

문의 : 070-4142-0897
휴관 : 매주 목요일

작가와의 대화 : 2017. 4. 15. 오후 2시

일요일 아침이면 목욕탕의 높게 솟은 굴뚝에서 하늘 높이 구름처럼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그라 들던 그 모습이 좋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목욕탕에서 정겨움과 그리움을 생각나게 하는 내 안의 무의식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목욕탕과 굴뚝을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싶게 만들었다.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는 뜨겁고 시원하던 온탕 그 곳이 그리워 사람들이 모이던 목욕탕은 언제나 정겨운 곳이었다.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시골 장터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욕탕을 방문하는 것이야 말로 연중행사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오랫동안 있기도 하고 낮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도 즐겁고 정이 넘치는 일상이었다. 더운 기운으로 머금은 뿌연 김 속에 희미하게 보이던 풍경이었지만 온탕 속에 옹기종기 모여 머리만 내밀어 보이며 쌓인 피로를 풀고 이야기들로 목욕탕을 울리던 목소리는 언제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요즘은 목욕탕보다는 사우나나 찜질방으로 변해가는 추세로 대중 목욕탕도 점점 고급화 되고 그 기능도 사람을 끌기 위한 여러 가지로 변화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보고 느끼던 촌스럽고 좁지만 소소한 정이 넘치던 목욕탕의 풍경에서 나는 그 시간과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간이침대에 누워서 때밀이 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눈을 감으면 아버지가 밀어주시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그리워진다.

흘러가는 시간은 영원할 수 없고 기억 속에서 지워가며 사라져버리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과 값진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그리움을 찾아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다.

<작업노트>

그리움을 찾아서

찬바람이 부는 겨울 저녁
아들과 함께 목욕탕엘 갔다
아들의 등도 밀어주고 아들은 내 등을 만지며
부자(父子)의정을 듬뿍 나누었다.

내 어릴 적 아버지와 다녔던 목욕탕의 추억이
아른 거린다
오늘같이 찬바람이 불면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내가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지금 아들과 함께 목욕탕엘 간다.
가끔은 사무치게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목욕탕으로
발걸음을 내 딛는다
보고 싶은 아버지
오늘같이 스산한 바람이 불면
따끈한 추억이 생각나는 목욕탕으로

그리움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기곤

<비평글>

우기곤의 목욕탕과 굴뚝

우기곤의 사진은 시대에 뒤처진 대중목욕탕의 쓸쓸함이 있다. 한 때는 번성했으나 이제는 쇄락한 낡은 목욕탕을 멀리 밖에서부터 점점 안으로 들어와 관찰한다. 이러한 시선은 긴 호흡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 대상을 자세히 보도록 만든다. 마치 범죄현장을 배회하는 수사관처럼 증거를 포착하는 시선이다. 그렇다고 애정 없이 대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발터 벤야민이 19세기 도시 파리를 우울한 열정으로 응시하던 그 모습처럼 멜랑콜리하다.
멀리서 우뚝 솟은 굴뚝은 이곳이 목욕탕이라는 증표로 유물처럼 서있다. 시간은 자꾸만 과거의 기억 속으로 흐른다.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는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목욕탕을 찾아 전국의 목욕탕과 굴뚝을 찾아 나섰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진 속 장면은 어딘가 쓸쓸하고 온기가 없는 장면들이 많다. 사람이 없는 텅 빈 탕 안은 스산하고 지저분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한물간 값싼 물건들과 빛바랜 가구들, 유행에 뒤쳐진 실내인테리어는 이곳이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는 듯 미래가 없어 보인다. 주인은 하염없이 객을 기다리고 손님은 드문드문, “목욕합니다”라는 표어도, “정기휴일” 안내문도 곧 문을 닫아 멈출 것 같은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 박제된 듯 보인다. 유행은 편리한 도구와는 무관한 것이다. 기능성과도 관계가 없다.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상품성이 떨어지면 용도 폐기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 논리인 것을 우리는 늘 잊고 지낸다. 이 도시가 무엇을 남기고 버려지는 지를 말이다. 우기곤이 기록한 낡은 구시대의 정겨운 목욕탕은 그렇게 우리시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기곤은 멀리서 우두커니 바라다본 목욕탕 굴뚝, 누군가 목욕한 흔적, 그리고 낡고 허름한 이곳을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속에는 낡음과 새것들이 이질적 컬러로 뒤섞여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보잘 것 없어 이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애틋한 상념에 빠진다. 그러나 어떤 것들이 사라지면서 불러일으키는 우울한 감정을 값싼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을 때 슬프지만,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멜랑콜리정서는 그래서 우울한 폐쇄적 감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지나친 감상적 사진은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다. 그런 사진은 어떤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의 위험으로부터 눈 감으려 한다. 대게 이런 사진은 표면적으로는 달콤한 추억으로 포장한 상품처럼 유혹한다. 오늘날 흑백사진들이 혹시 이 추억을 상품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과거의 추억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사진은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기곤의 사진이 추억을 상품화시키지 않았다는 증거는 현재 사라질 위기의 대중목욕탕 사진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컬러사진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나치게 현실적인 대상물이 지저분하게 디테일하게 드러나서 과거로의 회기현상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 왔다. 만약에 그가 잘 정제된 흑백 모노톤을 선택 했다면 마치 그것은 예술사진을 가장한 상투적인 다큐멘터리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우기곤은 그런 점에서 최근의 비예술적 기록사진의 전통 아카이브적 성격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진의 포즈를 문맥과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확립하는 것은 포즈에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사진의 포즈는 물리적인 시간의 정지를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포즈는 촬영자의 기술도, 촬영 대상의 태도도 아닌 읽기의 ‘의도’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사진가가 보았던 현실의 대상이 부동한 모습으로 있었던 장면을 읽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사진가의 시선 속에 포함시켰던 촬영순간에 대한 사유를 관객이 의식과 접속시켜 다양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인 재현의 맥락에서 단일한 의미를 고정시키는 방법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관객의 의식 속에서 추측과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다.
우기곤이 진정으로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감성에 치우쳐 호소하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과거의 추억이 교차하는 공간, 그 속에서 되찾고 싶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멜랑콜리 감정이었다. 먼발치에서 본 우뚝 솟은 굴뚝처럼 그의 사진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어떤 ‘멈’의 간극이 있다. 그 ‘멈’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불러온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그리움을 드러낸다. 아버지와 추억이 깃든 장소 대중목욕탕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감정은 완전히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현재에 머물 수도 없는 어정쩡한 시간의 흐름이 이 장소에 유령처럼 맴돈다.

사진이미지비평: 이영욱

원출처 : http://uram54.com/current/92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