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석환 스케치전-함석헌 기념관(2017.4.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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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道峰山)전을 열면서

지난 2월에 있었던 도봉갤러리의 ‘북한산국립공원전’에 이어 다시 ‘도봉산전’을 열게 되었다. 도봉구청 1층 로비에 전시시설을 마련한 그 곳은 장소의 특성상 많은 사람이 왕래하다 보니 전시 관람자의 수도 그만큼 많았다. 그런데 그 때 전시를 본 함석헌 기념관의 전시 기획자가 “우리 기념관에서도 그런 품격 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싶다”고 덕담을 하며 부탁을 하여 조심스레 응하게 되었다. 도봉동에 있는 함석헌 기념관은 함선생님이 만년에 오랫동안 거주하시던 가옥을 도봉구청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런 만큼 전시공간은 크지 않다. 하지만 도봉구청에서 김수영문학관 및 전형필 가옥과 더불어 문화벨트를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어서 미력하나마 지역문화에 이바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전시 주제대로 도봉산 그림만을 걸기로 했다. 처음 상의할 때는 도봉구청에서 했던 ‘북한산국립공원전’ 그림들을 옮겨 전시하려 했으나 기념관의 위치와 전시실의 규모를 고려해 도봉산 그림만을 갖고 하는 게 적합하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함석헌 선생님이 이곳에 집을 마련할 때도 도봉산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장소성을 고려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보니 ‘도봉산’만을 집중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고 작품도 더 제작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봉산의 빼어난 면모를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 떠올리던 도봉산의 대체적인 인상은 동남측 도봉동에서 정상부가 높다랗게 솟아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그 쪽에서는 도봉산의 정상부만이 부각된 채 산세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도봉산의 곳곳을 돌아보면서 예전보다 풍성한 인상을 더 갖게 되었다. 특히 도봉동의 반대편인 송추 쪽에서는 여성봉과 오봉 등의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풍경및 산세의 품과 깊이가 더해 보였다.

 

도봉산의 내면적 인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여성봉에서 정상부로 오르는 코스이다. 여성봉은 봉우리 자체가 천연기념물이 될 만한 자연의 신비로운 형상을 간직하고 있고 거기서 바로 건너보이는 오봉의 경관이 수려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그 장면만을 의식하다보면 거기서 보이는 전체 풍광을 제대로 대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여성봉에서 도봉산과 북한산이 함께 펼쳐 보이는 장면은 광활해 보이고, 북한산 국립공원 북동측 외곽에 위치한 사패산에서는 도봉산의 주능선과 오봉능선이 하나로 펼쳐 보이는 가운데 군데군데 솟아오른 정상부와 오봉 등의 기암괴석이 수려하게 어우러져 보인다. 또한 도봉산 정상의 봉우리 군을 이루는 신선대에서는 앞쪽에 솟은 도봉산의 겹겹이 솟은 봉우리들과 그 뒤로 희푸르게 바라보이는 북한산의 주요 경관과 기세가 겹쳐 보이는데 그것은 북한산국립공원 전체의 풍광에서 가장 빼어난 장면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수려함을 대하다 보면 정말 이 산을 가까이 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작품은 현장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만큼 도봉산을 더 많이 오르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고 그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나의 그림은 현장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듯 묘사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실체를 대하면서 느껴지는 장대함과 오묘함에 감동하면서 받은 그 느낌에 감응하여 순간적인 필치로 화면에 농축하듯 옮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풍겨나는 기세와 기운은 단지 형상의 묘사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의 그림은 그것을 바라보며 일어난 감각에 생생히 반응하여 몸짓으로 화면에 나타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매번 산을 오르는 수고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도봉산과 북한산의 장대한 장면을 한 화면에 담으려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림의 크기가 큰데다 그려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차례 다시 그리면서 반복해 오르락거리게 되었다. 또한 여러 장의 종이를 잇대어 그리다보면 전체의 톤과 구도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상부에 세찬 바람이 불 때가 많아서 종이가 펄럭거려 곤란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과정 속에 도봉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지난번 전시 했던 주능선과 자운봉 등 주요 경관과 더불어 도봉산과 수락산을 한 화면에 구성하여 그 사이로 흐르는 중랑천 및 마들평야와 함께 보이던 본래의 풍광을 느낄 수 있게 하려한 그림이나 여성봉에서 본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의 경관을 담아낸 것 등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산에 비해 부족했던 도봉산 그림이 보완되어 북한산국립공원 전체의 그림도 좀 더 충실히 갖춰지게 되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대하며 느낀 감동을 전하고자 한 이 그림들과 함께 도봉산의 빼어난 풍광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7년 4월 一梅軒에서 김석환

 

원출처 : http://www.kaah.or.kr/html/sub06_1.jsp?ncode=a002&num=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