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M에서는 11월 8일(수요일)부터 11월 29일(수요일)까지 김라연 작가의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Call the name of the lost things)>를 개최합니다.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오 프 닝: 2017년 11월 8일(수), 오후 6시
전시기간: 2017년 11월 8일(수) – 11월 29일(수)
화요일 – 일요일 오후 2.00 – 7.00 pm (월요일 휴관)
작 가: 김라연
전시장소: Space M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101, B1)
후 원: 서울문화재단
김라연은 현대인의 요람이자 무덤이 되어버린 도시의 변화와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를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며, 도시 표면에 나타난 도시 기표와 생태 풍경을 주목하고 이를 회화, 설치 등의 매체로 탐구합니다.<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에는 도시 곳곳에서 발견한 공사장의 풍경이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펜스에 가려져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혹은 벌어지길 바라는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공사를 위해 잠시 동안 세워둔 아시바 구조물, 줄지어 서있는 라바콘, 크레인, 이름 모를 기계들도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태위태하게 기울어져 있는 흙무더기, 녹아내릴 것만 같은 시멘트 덩어리…. 그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진 식물들의 부재한 이름을 불러주고, 빛이 바래져버린 간판에는 새 이름을 붙여주어 도시 지층으로 가라앉은 이들의 안부를 묻고자 한다.”몇 년 동안 마주했지만 이름도 모르고 지낸 이들…. ”
도시에서 소리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흔적들을 찾아 이름을 묻고 부르는 행위를 통해 이들을 의미의 장 안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어떤 이를 만나 알아갈 때 우리는 먼저 이름을 물어본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알아봐주기를 기대하고 대화한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국립 생태원에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인 형태로만 인지했던 이들의 몇몇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아카시아, 버드나무, 개오동나무, 애기똥풀, 사초, 망초, 억새 등등…. 알려주신 이름들을 토대로 서적과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가 보았던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였다.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이들을 보며 문득 이것이 ‘철수와 영희’ 같은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라는 이름(기표)이 똑같은 철수(내가 아는 그 사람)가 아닌 것처럼 아카시아라는 이름도 다 같은 아카시아가 아닐 것이다. 내가 보았던 것들,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들이 남긴 그림자와 같은 이름은 또한 부재의 이름들이다. 부재하는 이름들의 그림자를 다시 좇아가고자 회화의 언어로 ‘식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더듬어 알아가는 것처럼 식물의 형태와 특징을 관찰하며 그것의 굴곡과 깊이를 따라가 보았다. 상처를 내면 똥 같은 색을 낸다고 해서 이름 붙어진 애기똥풀, 향기롭지만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카시아, 이별하는 강 나루터에서 가지를 꺾어 정표를 주었다는 버드나무 등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도시로 다시 불러내고 목소리를 갖게 한다. 존재했지만 해석되지 못하고 사라진 이들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목소리를 갖게 된 이들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지 않을까.” (2015 책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묻다> 작가노트)펜스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잘 발린 시멘트 땅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며, 흙구덩이를 파헤치며 휘청거릴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엘리베이터 없는 4, 5층 건물에 올라가 숨이 턱에 닿고 얼굴을 창틈에 걸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도시에서 사라져버린 시간의 흔적들을 밝혀주기 위해 우리에게는 기억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궁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고고학자 Sarah Parcak의 말처럼….김라연김라연,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oil on canvas, 193.9 x 112.1cm, 2017
김라연, 파라다이스의 거리 Ⅰ, oil on canvas, 193.9 x 112.1cm, 2016
도시에서 소리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흔적들을 찾아 이름을 묻고 부르는 행위를 통해 이들을 의미의 장 안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어떤 이를 만나 알아갈 때 우리는 먼저 이름을 물어본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알아봐주기를 기대하고 대화한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국립 생태원에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인 형태로만 인지했던 이들의 몇몇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아카시아, 버드나무, 개오동나무, 애기똥풀, 사초, 망초, 억새 등등…. 알려주신 이름들을 토대로 서적과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가 보았던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였다.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이들을 보며 문득 이것이 ‘철수와 영희’ 같은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라는 이름(기표)이 똑같은 철수(내가 아는 그 사람)가 아닌 것처럼 아카시아라는 이름도 다 같은 아카시아가 아닐 것이다. 내가 보았던 것들,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들이 남긴 그림자와 같은 이름은 또한 부재의 이름들이다. 부재하는 이름들의 그림자를 다시 좇아가고자 회화의 언어로 ‘식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더듬어 알아가는 것처럼 식물의 형태와 특징을 관찰하며 그것의 굴곡과 깊이를 따라가 보았다. 상처를 내면 똥 같은 색을 낸다고 해서 이름 붙어진 애기똥풀, 향기롭지만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카시아, 이별하는 강 나루터에서 가지를 꺾어 정표를 주었다는 버드나무 등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도시로 다시 불러내고 목소리를 갖게 한다. 존재했지만 해석되지 못하고 사라진 이들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목소리를 갖게 된 이들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지 않을까.” (2015 책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묻다> 작가노트)펜스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잘 발린 시멘트 땅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며, 흙구덩이를 파헤치며 휘청거릴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엘리베이터 없는 4, 5층 건물에 올라가 숨이 턱에 닿고 얼굴을 창틈에 걸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도시에서 사라져버린 시간의 흔적들을 밝혀주기 위해 우리에게는 기억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궁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고고학자 Sarah Parcak의 말처럼….김라연김라연,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oil on canvas, 193.9 x 112.1cm, 2017
김라연, 파라다이스의 거리 Ⅰ, oil on canvas, 193.9 x 112.1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