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리허설

You are currently viewing 불안의 리허설
  • Post category:전시

587TH  2018. 5. 30 – 6. 10
불안의 리허설
임안나 Anna Lim

작업노트
불안 유발자를 향한 블랙 퍼포먼스
임안나

<불안의 리허설>은 지난 8년 동안 전쟁 무기를 소재로 한 <차가운 영웅>시리즈 작업 중 접하게 된, 타인의 고통이 담긴 사진들과 죽음 불안을 유발하는 미디어 감응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대상은 폭력의 도구인 ‘무기’에서, 비참한 죽음을 둘러 싼 ‘사람’으로 필연처럼 옮겨졌다. 사진은 사실을 증언하는 매체로서 등장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기록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삼각관계는 인간 본능에 자리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불안이 작동한다.

불안의 동력. 서울도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뉴스와 그로 인한 수많은 재난의 가설들은 타국의 테러로 인한 사상자 숫자와 피해액수로 환산되었던 비극의 크기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만약 그 죽음이 ‘나와 내 주변’의 현실에 온다면, 미디어가 공개하는 저 이미지 속 나약한 주검이 내 것이 된다면……, 모든 것을 달라진다. 나는 무감각, 불감증, 기피증 대신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불안증’을 작품의 동력으로 사용하여 미디어 속 죽음 이미지 패러디와 불안 표출을 시도하였다. 불안은 장면으로 다가왔다. 리얼한 영화였는지 드라마틱한 뉴스였는지 분간이 어려운 기억 속 스키마로 쌓여졌던 수많은 참사의 장면들. 나는 불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 비극을 구현하였다.

등장인물. 디스토피아적 상상에 참여할 사람들을 공개모집하였다. 안내 문구를 통해 ’한번 쯤 전쟁이나 테러로 인한 상해와 죽음을 상상해 보신 분‘으로, 사건 직후의 ’공포, 불안, 망연자실, 눈물, 무표정 등 개인의 감정을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행위의 목적은 사진촬영을 통한 예술 작품의 완성임을 사전에 공유하였다. 촬영은 한강공원, 광화문, 서울시청 앞 광장, 재난 훈련 현장 등 서울의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의상, 소품, 분장의 사전 단계부터 감정의 극화(dramatize) 된 신체표현과 촬영까지 94명의 등장인물과 11명의 스탭이 함께 하였다.

사진과 퍼포먼스. 설정한 상황은 미디어가 참사를 다루는 연극적(histrionic) 화법을 차용한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의 연출과 영화적 촬영기법으로 재현되었다. 작업은 사진의 실제 효과(마치 실제를 대리하는 듯한)를 활용하지만 상상을 통한 연출된 허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의 과장된 분장과 극적 퍼포먼스의 연출 요소들은 현실의 실제 요소들과 충돌한다. 이 전략은 비극적 이미지의 껍데기가 주는 상투적 감응을 방해하여, 사진 안에서 구현된 행위를 둘러싼 내러티브의 주목을 유도한다. 우리(등장인물과 촬영자)는 연극적 놀이가 주는 쾌와 무리가 주는 안도감 속에 불안을 예술적 행위로 승화하여, 무기력한 구경꾼에서 죽음 불안 유발자를 향한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였다. <불안의 리허설> 시리즈는 그 과정의 증거품이다.

 

원출처 : http://www.gallerylu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