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둥지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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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Thu) – 06.27(Wed)
작가와의 대화(Artist Talk)| 2018.06.16.(Sat) 4P.M.

《6월, 둥지를 떠나며》는 개인의 일상에서의 흔적을 조명하는 표현방법을 실험하는 작업을 이어 온 임여송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임여송은 이번 전시에서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주거하는 한 개인이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거주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2017년 이래 임여송은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삼선동에서 관찰한 건축구조물의 일부와 물건들을 한지와 꽃잎, 낙엽 등의 재료로 본뜨는 작업을 해 왔다. 건물 외벽의 장식물과 장독을 한지로 덮어 그 외형을 본뜨는 작업은 일종의 ‘껍질’, ‘막’을 만드는 행위로, 작가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 자신과 이웃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본뜨기 작업을 한 결과물과 아파트 단지 풍경을 병행해서 촬영한 사진 작업은 삼선동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과 자신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 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작가노트

1.
6월 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거 같던 집을 떠난다. 평생을 지내왔고 지켜왔던 삼선동 할머니 집과 그 동네는 재계발로 인해 하나 둘씩 떠나야 한다. 삼선동 3가 할머니 집 동네는 할머니가 반평생 살아온 동네이고 나의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이다. 하지만 그런 이 동네는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그 동네가 쌓아온 시간과 흔적은 사라질 것이고 황량한 땅을 거치고 세워질 아파트는 우리에게 축적된 그 공간에 대한 기억조차 점점 흐릿해지게 만들 것이다. 이미 동네 절반은 빼곡한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슈퍼가 있고, 약국이 있고, 세탁소가 있었던 장소는 큰 주차장이 된지 오래고 개구리 소리가 들리곤 했던 달동네의 모습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파트단지와 주택단지 경계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느껴지는 둘 사이의 이질감은 현실의 한 단면처럼 보인다. 바로 앞에 우뚝 서있는 아파트들은 곧 이곳을 휩쓸 거 같은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언제 존재했는지도 모르게 흔적 없이 사라질 할머니 댁을 떠나며 느껴지는 일렁이는 감정과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질 그곳을 기록하고자 한다.

 

2.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는 사람들이 흘러가는 시간에 끌려가듯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문뜩 가끔씩 몰려오는 지루함은 참을 수도 없이 삶을 지겹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사람들은 우리에게 펼쳐진 세상에서 본인의 존재에 대해 기울이며 잘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일상에서 자신을 망실한 채 분주하게 사는 것은 비 본래적인 삶이라 하였는데 높은 테라스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가 말하는 비 본래적인 삶과 닮아있었다. 비록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라도 나 또한 그가 말한 비 본래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를 마치고 또 다시 올 오늘을 위해 잠자리에 누웠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그 공허함은 또 다른 나를 뺐어간 거 같은 불안함을 가져왔다. 멈출 수 없는 시계, 반복되는 오늘. 그 안에서 잃어버린 정말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어제가 될 오늘 하지만 또 찾아 올 오늘. 오늘의 반복에서 내가 나의 실존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역시나 또 반복되는 노동뿐인 걸까.

그러던 중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어느 노부부와 백구의 집의 변화를 보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그들을 대신하여 반겨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 나는 노부부와 백구가 남긴 흔적을 보고 일상의 흔적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지만 반복되는 시간에서 나 또한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상과 바쁘게 회전되는 사회 속에서 사소한 경험을 무심코 지나친다. 학생들은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사회인들은 그들의 스케줄에 따라 똑같이 패턴화된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사건들과 변화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남겨지고 있을 자신의 흔적을 살펴본다면 그들의 일상은 매번 새로운 길 앞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원출처 : http://www.spaceno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