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주 가는 길,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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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 가는 길
2018-10-10-2018-11-03
김홍희

‘상무주(上無住)가는 길’

암자를 간다는 것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을 간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 그곳이 바로 상무주다.
그 위로 더는 머무를 곳이 없는 곳을 향하는 것이 바로 암자를
향한 발걸음이며, 그 길이야말로 상무주를 향한 길이다.

상무주 가는 길 책 서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암자를 처음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암자로 가는 길』을 쓴 정찬주
선생 덕분이다. 1995년, 23년 전이다. 정찬주 선생은 「중앙일보」에
‘암자로 가는 길’ 연재를 시작하며, 거기에 걸맞은 사진가가
필요했다. 그는 당시 샘터사에 근무했고 나는 「샘터」에
연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처럼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어느 날, 그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MorningCalm)」에 실린
범어사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정찬주 선생이 사진에서
기계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평하며 암자 취재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이 선의로 나는 전국의 암자를 정찬주 선생과 함께,
아니면 홀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일본 유학은 나를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게 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정체성이
전혀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우리 정신의
지적·정신적 원류의 충족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유불선(儒佛仙)을 익히지 않고는 한국적 사유를 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즈음, 정찬주 선생의 제안은 나의 지적 물꼬를 틔운 사건이
되었다. 모태 신앙의 크리스천이 불교를 접하고, 유교를 만나고,
도교를 익히는 기막힌 계기가 된 셈이었다. 크리스천인 내가
불교 사진 찍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분이 있는데, 예수님은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불교나 불교신자는 나의 원수도
아니거니와…. 그리고 나는 CC(크리스마스 때만 예배당에 빵 받으러 가는,
크리스마스 크리스천)다. 그렇다고 내 믿음을 의심치는 마시라.
아무튼 정찬주 선생 덕분에 불교도 공부하고 동양철학도
공부하게 된 것은 참 복 받은 일이다. 이 책의 서문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이 책 『상무주 가는 길』을 찍고 쓰게
된 것 역시 순전히 정찬주 선생 덕분이다. 말을 빙빙 돌려서
좀 멋지게 하고 싶으나, 도무지 내 성향에 맞지도 않거니와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우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서다. 우리는 종교를 두고 너무 경건주의에 빠져있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진이 글을
보조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에 대한 반감에서다. 사진과 글이
제 할 노릇을 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으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종교의 경건주의보다 종교가 존재해야 하는 마땅한 바를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그러면서 사진과 글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 정찬주 선생을 향한 도전이거나 그와 함께한 『암자로
가는 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는 단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래전 간 곳을 다시 가는 것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거기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한 강력한 끌림이 없으면
그 장소를 다시 가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 여행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암자로의 끌림은 지금 생각해보면 부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상무주 가는 길』을 구상하며 ‘읽는 책’인 동시에 ‘보는 책’을
추구했다. 그만큼 사진의 양과 질에 많이 치중했다. 그리고 순서
없이 눈을 끄는 사진이 있는 곳에서 호흡을 멈추고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그런 곳이 앞이거나 뒤거나 중간이거나 상관없게 했다.
특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책을 들고 현장에 가서 같은
화각으로 암자 찍는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한다. 교과서적인 화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찍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지도 모른다.
20년도 더 전, 암자를 처음 취재하던 때에는 자동차로 전국을
돌았다. 요즘은 혼자 돌아다니니 가능하면 가벼운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닌다. 암자와 모터사이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조합
같지만 혼자라는 점에서는 아주 유사하다. 혼자가 되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암자 취재한다고 선인세도 받았고, 새 모터사이클도 샀다.
산으로 들로 막 달리려면 듀얼퍼포먼스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암자 취재를 핑계로 선인세와 아내가 모르는 돈을
더해 모터사이클은 사긴 했으나 취재하는 내내 기름값이
걱정이었다. 모터사이클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1,300cc 모터사이클은 차만큼 기름을 먹는다.
어쨌든 1권의 취재는 끝났다. 이 책이 잘 팔려야 2권 취재를
위한 기름값을 선인세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위에 많이
권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암자에 갈 때는 반드시 이 책을
들고 오르시기 바란다. 그래야 당분간 기름값 걱정 없이
다음 책을 취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많이 써야 한다고 끝없이 주장하며 쪽수를 불려
책값 올리기에 열 올리고, 사진에 대해 좀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 끝없이 사진 디자인에 간섭한 나를 웃으며 보아준
편집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약속한 날짜에 원고를 넘기기는커녕 대장암 수술을 받으러
병원으로 직행해버린 필자를 한없이 기다려준 불광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불교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원력을 발해주시는 부처님께
가없는 감사를 올리며, 더불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도 지극히 높은 감사를 올린다. 더불어 두 분 다
상무주(上無住)에 계시더라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암자를 간다는 것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을 간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 그곳이 바로 상무주다.
그 위로 더는 머무를 곳이 없는 곳을 향하는 것이 바로 암자를
향한 발걸음이며, 그 길이야말로 상무주를 향한 길이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8년 가을 오리마을 창가에서
김홍희

 

원출처 : http://www.space2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