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비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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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8-10-04 ~ 2019-01-13
전시장소 : 2전시실, 초헌장두건관
전시작품 : 평면, 사진, 영상, 설치 36점
참여작가 : 김홍식, 김훈, 박경근, 박진영, 오원배, 이한구, 허병찬
초대일시 : 2018. 10. 17.(화) 오후 4시
관람시간 : 하절기(4-10월) : 오전 10시 ~ 오후 7시, 동절기(11-3월) : 오전 10시 ~ 오후 6시
입장시간 :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이 가능
관람료 : 무료

“많이 가질수록 적어진다 . . .” 리처드 슈스터만(Richard Shusterman)

지난해 5.4 강도의 포항 지진을 목격하면서, 오늘날 도시에서 발생한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 그 자체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2011년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대지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원자력방사선 오염은 후쿠시마현(福島県) 후타바(双葉) 마을을 폐쇄하고 많은 이재민을 남겼다. 또한 방출된 원자력방사선 오염물질이 국가 간 무역교류를 통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거쳐 다른 도시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 끔찍한 ‘사실’은 자연 상태에서 발발한 자연재해보다 도시에서 발생한 자연재해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것은 또한 환경문제를 넘어 탈핵, 인류의 생존 등 사회·경제·정치적인 복합적 층위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시 문제들에 대한 접근도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관점을 취해야 한다.

최근에 도시에서 발생한 재난들의 복합적 양상은 근·현대도시들의 산업화·정보화 과정에서 초래된 문제들이 축적된 결과이다. 이를테면 고도성장과 경제개발이라는 신화 뒤에 양산된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와 생태계의 불균형. 사람과 물질과 정보의 과잉으로 단일화, 규격화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도시 메커니즘(mechanism)의 엄격한 규율과 균일성. 이에 따른 인간의 동질화와 집단화가 일으킨 개성의 무시와 소외 현상. 대량생산과 소비의 수레바퀴라는 자본주의 시장 구조가 낳은 끊임없는 소비 욕구. 앙고성을 갖는 빌딩 숲의 도시 외양처럼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우려는 권력과 부의 욕망 체계. 이 모든 것들이 산업화·정보화로 인해 축적된 도시의 문제들이다.

리처드 슈스터만(Richard Shusterman)은 도시의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구조화된 욕망의 체계 안에 “많이 가질수록 적어진다는 고통스러운 역설”이 내재한다고 언급하면서, 도시의 다량성, 풍족함에서 기인하는 사회적•미적 문제에 비판적 관심을 가졌다. 많이 가진 것 같지만 잃는 것이 더 많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도시의 많은 문제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량도 과도하게 넘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시 문제들을 파생한다. 반성할 여지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실행하는 것이 반드시 가치 있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문해보아야 한다. 왜 부지런해야 하는가? 게으르면 안 되는가?

이번 전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됐다. 초대된 7명의 작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근·현대 도시의 다량성, 풍족함, 규격화, 속도, 생산성, 반성 없는 ‘부지런함’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무위(無爲), ‘게으름’, 비움(emptying)의 가치에 대한 미학적 탐색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미학적 탐색은 ‘도시, 꿈’이라는 소주제로 시작된다. 김훈, 이한구, 허병찬은 해양산업도시, 포항과 부산의 공통된 외양을 형성하게 된 산업적 배경과 그 이면의 아픔을 병치시키면서, 도시의 역사적 질곡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도시민들의 끈끈한 생명력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도시의 꿈은 그 많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두 번째 미학적 탐색은 역시 2전시실에서 ‘도시, 그늘’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박경근, 박진영,오원배는 각각 영상, 사진, 한국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조형기법으로,근·현대산업도시의 규격화, 속도, 생산성, 정보화, 첨단 과학기술력이 초래한 도시의 그늘진 면을 돌아보게 한다. 세 번째 미학적 탐색은 상설전시실(초헌 장두건관)에서 ‘도시, 산책’이라는 소주제로 전개된다. 김홍식은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 위에 도시 풍경을 주로 돋을새김한 평면작품을 선보이는데, 20세기 초반 ‘도시 산책자(플라뇌르, flâneur)’의 시선으로 도시의 물리적 ‘비움’과 정신적인 ‘비움’의 가치를 음미하게 한다.

이처럼 7명의 작가들은 각기 독특한 조형언어로 도시의 문제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직접적인 소재로 활용하든 간접적인 이미지로 활용하든 모두 철(鐵)과 도시의 관계성을 모티프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도시에서 ‘철’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철이 없었다면 오늘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미술관이 스틸아트뮤지엄(Pohang Museum of Steel Art)으로서, 형식적 차원으로 철을 다루는 작가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도시와 철의 관계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작가들이 참여했다는 점 또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포항제철소(POSCO) 공장 외형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 사진, 포스코의 제철, 제련을 다룬 영상, 철조 선박으로 유출되는 원자력방사선 문제를 다룬 사진, 상징적인 철조 건물 위에서 넋이 빠진 듯 노동하는 인간의 형상, ‘부지런히’ 일하는 포스코 근로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도시의 일면을 담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원출처 : http://poma.pohang.go.kr/poma/p_exh/e_pre/?boardTheme=webjine&skw=&md=now&mode=read&idx=5879&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