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심야산보Ⅱ
2019-07-17-2019-08-09
김동욱
■ 전시 내용
스페이스22에서 사진작가 김동욱의 <서울,심야산보Ⅱ>전시회가 열린다. 2018년 7월 <서울, 심야산보> 전시회에 이어 1년 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사는 김동욱 작가는 인적이 끊긴 밤 시간에 건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20여 년간 역사가 새겨지거나 묻어있는 공간을 부러 찾아 방황하거나 산책하며 공간의 기억과 흔적을 기록해온 것이다. 작가에게 서울의 옛 자취를 바라보는 것은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겨울날 저녁 식사 후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중구를 걷다가 바라본 건물들의 사진이 작가에게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이다. 어릴 적 추억에 대한 회상이어서일까 아니면 곧 사라질 풍경에 대한 애잔함 때문일까, 작가가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본 서늘한 중구의 밤풍경 속으로 가보는 것으로 한여름 더위를 잊을 수 있겠다.
서울역, 소공동, 을지로를 이어 충무로 등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타일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근대풍경여행을 해 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에는 2018년 작품 15여 점, 2019년 작품 20여 점이 선보이며, 시리즈를 결산하는 작품집도 출간한다.
■ 기억을 쌓지 않는 우리 시대의 삶에 기억을 불어넣다
“길 잃은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은 서걱거리는 마른 나뭇가지의 목소리처럼 말을 걸어와야 한다. 도시의 작은 골목들은 산 밑의 골짜기 못지않게 지금이 몇시쯤 되었는지 암시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 유년 시절’ 『일방통행로』(1928) 중에서
그는 사진을 찍으며 저항했다. 모든 것이 금방 늙어버리고 추억은 희미하게 소진되어가는 이 시대 우리 삶의 조로증과 망각증에 맞섰다. 역사가 새겨지거나 묻어있는 공간을 부러 찾아 방황하거나 산책했다. 기억의 지층을 쌓지 않는 비인간적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발걸음들이었다.
사진가 김동욱은 지난 20여년간 그렇게 공간의 기억과 흔적을 기록해왔다. 도시의 건축과 농촌의 사람들, 부근의 자연, 혹은 인공적으로 만든 역사 재현공간 등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 미묘한 공간의 단면들을 렌즈에 담았다. 차츰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건 지난날의 어떤 시공간을 기억하고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를 형성한 과거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몸짓과 눈짓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잘 몰랐던 역사적 풍경들을 일상의 공간에서 고심하며 끄집어낸 작업은 작가의 중요한 특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동학농민혁명군의 후예인 전북 정읍의 농민들이 남도 들녘에서 일하다 작가와 눈을 맞추며 찍은 1995년 그의 첫 사진집 『농민』을 기억한다. 지금도 여전히 농민군의 기운과 맥이 재림하듯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기념비 풍의 인상을 지닌 연작들이었다. 민중미술가의 농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리얼리즘 회화 스타일의 사진들이 작가에겐 역사 흔적 찾기의 첫발이 되었다. 그 뒤 2000년대 들어 작가는 잠행 끝에 역사적 랜드마크의 미니어처 세트와 한국, 중국의 근대 도시 가로를 재현한 영화 스튜디오를 흐릿한 톤으로 찍은 《그림엽서》《오래된 사진첩》 연작들을 들고 나타났다. 사진을 통해 어떻게 역사를 보고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던 작업이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는데, 그 질문을 좇다 후속 작업에선 시선의 역사를 훨씬 이르게 올려놓는다. 300년 전 조선의 대화가 겸재 정선이 그려낸 서울과 주변의 진경산수화의 풍경을 사진으로 본떠 찍은 2009~2015년의 강산무진도‘ 연작들이었다. 기계적인 사진으로 겸재의 그림 공간을 재현해본 현대 서울의 산수 풍경과 선조들이 인문적인 눈길과 가슴으로 그린 수묵회화의 풍경은 얼마나 간극이 큰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했다.
역사를 담거나 성찰하는 사진에 대한 생각은 갈수록 깊고 치열해졌다. 발품과 머리품을 무수히 들여 과거 풍경의 기억, 과거 사람들의 시각적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를 작가는 차분하게, 집요하게 거듭해왔다. 급기야 2년 전부터 김동욱 작가는 캄캄한 밤 서울 도심의 일상거리로 시선을 좁혔다. 오밤중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거리의 산보객이 되어 길가의 오래된 근현대 건물들을 초상사진처럼 클로즈업해 찍고 있다. 오래된 사진첩 연작에서 보여주었던 근대 풍경에 대한 관심이 이제 서울 도심의 상가건축의 본격적인 산책과 답사로 전환되어 표출되는 중이다.
지난해 8월 서울 갤러리 담에서 《서울, 심야산보》란 전시 제목으로 처음 선보인 근작 사진들에는 한밤의 정적에 싸인 서울 도심 거리가 무대처럼 등장한다. 그 심야의 거리에서 가로등 불빛에 생경한 외벽과 창틀을 빛내며 나름 쟁쟁한 풍모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건물들이 바로 주인공이 된다. 을지로와 청계천 종로 그리고 무교동 서울역 부근에 열차의 대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열한 상가주택들이다. 전후인 1950년대 말이나 1960년대 초중반에 지어져 과거 수도 서울의 대도시 가로 경관의 상징물로 꼽혔던 건물들이었다.
거대 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서고 곳곳이 재개발 권역 개발로 면모를 확 바꾸는 서울에서 이 퇴락한 사진 속 건물들은 생존 다툼 속에 뒤로 밀려나 있다. 후줄근하고 기가 빠진 듯한 저층의 콘크리트 타일 건물들이나 격자창 혹은 격자 틀로 건물 앞면을 구획한 3~5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거나 단독으로 있는 모습, 아니면 거대한 빌딩군 후면에 웅크린 품새로 있는 장면을 작가는 찍었다. 해방 이전 지은 옛 일본의 상가 주택 건축물인 다층 마치야(まちや, 町屋)를 개조한 듯한 가게(종로 5가 동화스텐 가게, 〈종로5가 332-27〉)와 벽면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마감한 일제강점기 병원 건물(용산 옛 철도병원, 〈한강로3가 65-154〉) 등도 있다. 작품은 야간의 조명 속에서 선과 형체를 부각한 조형물의 구도로 대개 다가오는데, 사진 속 건물은 무대 위에 올라 존재 자체로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서늘한 그의 작업들은 옛 공간에 대한 낭만적 향수에 매몰된 작업은 분명히 아니다. 이 건물을 통해 과거의 도시역사, 일상역사의 지층을 발굴하는 작업이 된다.
주거사 연구의 대가인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2년 전 펴낸 『거주 박물지』를 보면, 서울 도심의 낡은 상가주택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중심부의 중요한 가로에는 4층 이상의 건물을 짓고 1층은 점포로 하고 2층부터는 주택으로 하면 토지를 이용하는 것이 되고 외국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며 도심 주요 가로에 상가주택을 지을 것을 서울시와 정부 부처에 강권한다. 그 뒤 그해 8월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모르타르나 타일을 외벽에 부착하고 철제셔터 정면과 스틸 새시 창호를 두른 급조 건물들이 을지로 남대문로 퇴계로 충무로 서울역 종로 등에 200동 가까이 양산되어 들어서게 된다. 그때 속성으로 모더니즘 건축을 흉내 내며 들어선 상가건물들이 지금까지도 서울 거리 경관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후 수도 미화 사업이자 주택난 해소를 위한 사업으로 기획된 관 주도형 건물들이지만 80년대 이후엔 퇴락을 거듭했다. 다른 신축건물들에 의해 속절없이 밀려 철거당하고 개조되고 방치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박 교수가 짚었듯이 특유의
서울형 건축유형‘을 형성한 이 상가건물들은 서울역 바로 맞은편 관문빌딩(<남대문로5가 63-17>)이나, 염천교 제화상가 빌딩(<의주로2가 61
)처럼 지금도 일부는 도심의 재래식 경관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이나 도시건축의 경관 구성 작법이 50~60년대 서울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박 교수는 “가련한 도시건축으로 남겨진 상가주택은 그저 누군가 벗어놓은 철 지난 외투처럼 누추하고 허름한 것이 아니라 서울의 도시건축과 국가적 건축문화 자산임을 밝힐 수 있는 응답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책에 적었다.
김동욱 작가의 새 사진집은 남대문로 5가 서울 역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하명 건축물로 지어진관문빌딩‘과 허름한 주변 상가건축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이어 을지로 퇴계로 종로 등을 거치며 김 작가가 찍은 상가주택의 사진들은 벽면 곳곳이 훼손되고 더럽혀지고 각종 공구, 자재상과 사무실로 꽉 들어찬 그저 그런 업자들의 지저분한 건물로 비친다. 격자형으로 채워진 전면부, 전체 벽을 타일 마감해 지금 도시건축과는 다른 외양, 세로형 격자와 창틀을 구성한 은행 지점 건물, 세로로 긴 창을 내거나 모서리 부분에 나름 틔움 기둥 장식을 해 멋을 부린 이미지 등을 볼 수 있다. 애초에 도시 가로에 에너지를 불어놓고 서민들의 주거까지 해결하는 복합적 건물로 지어졌지만 이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도 심야의 사진은 드러내어 준다. 이런 건물의 역사적 정황을 김 작가의 사진들은 슴슴하고 서늘하게 표출한다. 과거의 도시 역사, 일상 생활사의 묻혔던 시간과 공간을 발굴하는 작업이기에, 일반인들 시각에는 시각적 자극이나 조형적 강렬함이 별로 없어 보인다. 정작 김동욱 표 사진의 묘미가 생기는 건 바로 그 지점부터다. 평양냉면 국물 같은 눈맛의 화면을 계속 눈아귀에 집어놓고 시신경을 움직여 질겅거리다 보면, 입에 씹히듯 서울 근대 역사의 오롯한 산미가 점차 눈가에 시지각에 번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품의 등기 연대, 공시지가에 대한 그의 조사작업이 부가된 제목과 설명을 대조해보면서 건물이 놓인 가로와 그 땅의 역사를 반추해보면, 흥미로운 20세기 서울 가로의 역사적 지형도가 조금씩 떠오르게 된다. 눈여겨볼수록 뚜렷해지는 도저한 작가의 인문적 시선과 앵글을 점차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부각되는 요소들이다. 건축의 풍경 속에 그 어둠과 거리의 단면 속에 날카로운 작가의 역사, 기억에 대한 생각이 올올이 스며있다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그건 김동욱 작가의 사진에서 발견하는 기억하는 방식, 혹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선이 자아내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밤은 낮에 활발하게 움직였던 세상의 동물과 사물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쉬며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우리 몸의 활동을 멈추고 감성과 예지를 작동시키는 시간에, 작가는 눈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가로등의 희미한 조명을 받는 가운데, 퇴락한 도심 건물들이휴식하는행렬속으로걸어들어간다. 거기다 무대를 설정해주고 스스로 건물들로하여금초상사진을찍으면서모노드라마를연출하는구도를만든다. 낮의 태양광 속에서 컬러풀한 색감과 현란한 커튼월 건물과 각양각색 차량들의행렬속에서묻혔던옛상가건축의디테일은밤이되자어둠에의해주변이묻히면서되살아난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신축빌딩 사이에 남루하게 섰던 오래된 건물‘은 환영 속 배우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도시와 사람들이 지난 세월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고 바뀌었는가를.
파인 아트지에 피그먼트 안료로 프린트된 사진들은 남루한 상가건축 골목건축 건물의 외관을 담는다. 기본적으로 50년 60년을 넘어가는 1930년대부터 60년대 말까지의 등기일지와 제곱미터당 1천만원~2천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시지가의 기묘한 어울림이 그의 근작 신작 새 사진집의 수록 사진들의 전반적인 특색을 이룬다. 오래된 과거의 시간과 공간이 치솟는 현실의 땅값과 어찌할 수 없이 엉켜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사진 속 도심 옛 건축물에 얽힌 과거의 등기기록과 현실의 땅값 등 건물 정보에 대한 치밀한 아카이브 조사를 촬영과 병행해온 건 이번 근작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작가는 문자 그대로 눈뿐만 아니라 몸과 발품을 들여 시내 도심 주요 재래식 건물에 대해 입체적인 서지학적 조사를 벌여 이 연작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을지로 5가의 옛 미군 극동공병단 건물이 일제강점기 경성의 명문 학교였던 경성사범학교의 드넓은 캠퍼스 건물이었다는 사실과 무교동의 맛집으로 소문난 곰국시집의 건물이 70년대까지 대한성결교회 중앙교당의 건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07년 건립되어 1928년 현재 적벽돌 건물이 된 이래 오늘날 일제의 용산 군 용지 철도 개발의 자취를 유일하게 증언하는 유산인 용산 철도병원이 앞부분 캐노피가 떼어진 것 외엔 지금도 온전하게 남아 역사를 증언하기를 바라듯 건재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그의 어둠 속 사진에서 직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수년 전 겨울 어느 날 저녁 지인들과 모임을 하고 소공동 오피스타운 거리를 걷다가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불현듯 건물들이 다가와 자신한테 독백하는 듯한 느낌에 홀연히 작업을 착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야의 근대 건축물 촬영 작업은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의 유년 시절 서울 도심 체험과 더욱 깊이 잇닿아있는 듯하다. 서울 토박이였지만, 작가는 유년 시절 부친의 사업 실패로 해방촌과 갈현동 등 서울 변두리를 수시로 이사 다녔다. 서울 남산과 동대문, 서소문 등의 도심 초중고를 서울 변방의 집에서 고달프게 통학해야 했던 그는 날마다 차를 타고 서울 도심의 건축과 도시 가로가 격변하는 현장을 낱낱이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런 경험이 왜 이런 건물들을 찍어 보여주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작가는 털어놓는다. 지금은 비루해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운명이지만, 수십 년 서울의 일상 기억을 만들어냈던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이 작용했을 터다. 역사의 신을 믿는다는 작가는 굽이치는 역사의 격류 앞에서 명멸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아련함이 작업의 배경에 있었다고 했고, 작업하면서 지금의 우리 터전을 만든 옛 세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심야산보’라고 명명한 작가 특유의 접근법으로 과거 근대의 시간을 적립한다. 기억이 쌓이지 않는 지금 시대의 삶과 공간에다, 찍고 적고 기록한 옛 건물 사진과 자료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발굴하고 꺼내놓는 작업이다. 그렇게 나온 사진들은 머리와 몸을 굴려 우리가 살아온 공간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잊혀가는 것을 남기고 지키기 위한 구명의 과정이다. 한편으론 오직 현실에만 매몰되면서 그날그날만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우리의 메마른 생활 의식을 일깨우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산책과 방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른다. 다만 2년간의 작업을 통해 건물의 디테일한 세부를 좀 더 날카롭게 투시할 수 있게 됐고, 사진의 배판은 훨씬 커졌으며, 주요 상가건물들의 등기연도와 지번, 공시지가 등에 대한 아카이브도 더욱 많이 확보되었다. 그의 근대 건축 초상작업은 더욱 내실이 충실해졌다고 할 만하며, 밤중에 산책하며 도시의 비경을 탐험하고 포착하는 방법론 또한 좀 더 많은 작가에게 확장되고 변주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인이 가진 과거 근대의 역사적 기억은 전통시대보다도 빈약하다. 최근 을지로 종로 재개발 논란에서 보이듯 도시의 공간과 삶터, 건축에 새겨진 근대의 흔적은 더욱 급속하게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는 중이다. 작가는 심야산보를 통해 포착한 근작에서 과거 근대의 시간을 적립한다. 우리에겐 사라지고 없는 시간, 기억이 부재한 우리 삶에 아직도 곳곳에 있는 기억을 되찾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작가의 작업이다. 그가 깊은 밤에 앵글을 움직여 끄집어낸 과거 도시 공간, 도시 건축의 흔적과 기억들이 한국인이, 서울 사람들이 공유해온 과거 시간의 총량을 더욱 풍성하고 두텁게 해줄 수 있기를 고대하고 갈망한다. (노형석)
■ 작가의 말
Ⅰ
도시에 밤이 오면 낮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분주히 움직이던 자동차의 행렬, 생계를 잇기 위해 바쁘게 오가던 사람도 사라지고 간간이 보이던 취객의 흔들리는 걸음마저 어둠에 묻히면, 한낮에 위용을 자랑하는 신축빌딩 사이에서 남루하게 서있던 오래된 건물이 당당한 자태로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가 어떻게 생기고 바뀌어 왔는지를.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나는 바람에 흩어진 이야기들을 주우려, 거리를 이리저리 목적지 없이 걸었다.
작품 제목 밑의 사족(蛇足)은 방향 없는 나의 걸음만큼이나 흐트러진 생각의 파편이다.
작품 제목 《서울, 심야산보(深夜散步)》를 “Midnight Balade in Seoul”로 영역해보았다. ‘Balade’는 프랑스어로 ‘산책(散策)’, ‘산보(散步)’의 뜻이다.
Ⅱ
이 책의 일부 작품으로 갤러리 담에서 《서울, 심야산보(深夜散步)》의 타이틀로 2018년 전시를 하였다. 전시가 끝날 무렵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워낙 오랫동안 누워계셨기 때문에 전시 시작 전후 임종 소식이 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며 전시 준비를 하였다. 오래된 건물을 촬영하며 마르고 약해진 어머니의 몸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거리를 메우던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알던 서울이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