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람 기획_ 김희연, 리슨투더시티, 오카마츠 토모키, 이재욱, 이주타+최호진, 조준용
2019.9. 4 – 9. 29
이 도시에는 언제나 사라지는 장소가 존재한다. 사라진 장소에는 새로운 장소가 생겨났지만, 이 도시는 여전히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사라진 것들은 과거가 되고, 상실과 부재로서 다시 이 도시의 현재에 남는다. 사라진 어느 장소 혹은 어느 장소의 과거는 ‘현상하면서 동시에 현상하지 않는 것’이면서, 존재-온톨로지(Ontology)이자 유령-온톨로지(Hauntology)이다.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것, 마치 유령처럼 과거의 현존이 부유하는 이 도시는 유령도시다.
<고스트 씨티>는 쉼 없이 해체되고 재생되는 현대도시를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시의 장소에 개인과 사회가 쌓아온 중첩된 기억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느 장소가 지닌 과거의 모습 또는 과거의 사건이 남긴 비가시적 상흔과, 매일같이 목격하는 장소의 물리적 변화-대체-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대도시의 장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은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사회 정책일 수도, 자본을 근간으로 하는 권력일 수도, 기후 환경의 변화일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들이 장소를 변화시켜 왔고, 이동성과 흐름이라는 공간의 패러다임에 의해 도시의 장소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흔적을 남겼다. ‘
이 전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뉘며, 각각 두 개의 장소에서 열린다. 하나의 축은 물리적 변화를 겪는 장소들을 주목한 작가들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고, 이에 따라 도시는 장소 상실을 겪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외형-경관을 바꾸어 왔다. 개별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과거의 장소가 사라지고 새로운 장소가 생겨나기도 했다. 주로 도시의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 그룹 리슨투더시티의 <도시 목격자>(2017)는 2000년대 이후 해체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다섯 감독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그들이 목격한 도시는 거듭되는 재개발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기록한 이야기들을 통해 도시 문제를 다시 돌아본다. 건축가 이주타와 도시연구가 최호진은 기획자와의 협업을 통해 발간되는 책 『옥상과 창문: 눈으로 보는 건축 시간으로 보는 도시』와, 구술 영상, 기록 사진, 드로잉으로 지난 십여 년간 수집해 온 이 도시의 건축 자산과 동네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골목길의 풍경, 건축물을 관찰하고, 수많은 변화를 겪는 동안 사라진 것과 아직 남아있는 것에서 이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는다. 회화 작가 김희연은 재개발의 바람으로 인해 주거인이 떠난 집과 아직 누군가 주거하고 있는 집이 공존하는 동네에서 덧붙여진 인공구조물이나 임시적으로 설치된 건축물, 또는 한 장소에 버려진 것과 사용되는 것이 섞여 있는 기묘한 풍경을 포착하여 화폭에 담는다. 김희연이 발견한 것은 도시의 장소가 점차적으로 모습을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그 장소에 남겨진 삶의 흔적들이다.
또 하나의 축은 도시의 장소에 중첩되어 쌓인 시간과 사건의 흔적들, 즉 장소가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이다. 조준용은 서울의 어느 특정 장소의 과거 사진을 순환도로에 영사하여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량에 남겨지는 잔상을 촬영한다. 과거의 장소가 영사되는 순환도로 너머에는 현재의 장소가 있다. 과거의 아파트는 현재의 아파트로 대체되었고, 저층 주택이 모여 살던 동네에는 고층 아파트가 세워졌다. 과거에 모던 사회의 상징이었으나 4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가 되어 철거된 정릉 스카이아파트처럼,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오히려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된다. 장소는 더 이상 고정된 것이 아닌 비-장소로 존재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영상작업 <원더 시티 1997>(2019)로 확장되었다.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는 컴퓨터 게임 ‘심시티’를 이용하여 현대도시 서울을 재현하면서, 건설과 파괴라는 행위를 더한다. 반면, 일본 작가 오카마츠 토모키는 <変わる街の輪郭(변화하는 거리의 윤곽)>(2018)을 통해 구마모토 대지진 이후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관찰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 도시의 건물들은 지진 후 안전관리지침에 따라 하나씩 철거되고 있다. 지진 피해를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은 도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도시에는 마치 썩은 이가 군데군데 빠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공터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재개발 사업이 가속화되었다. 과거의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과정을 몇 년 째 겪고 있는 이 거리의 장소에서 작가는 현재의 일상이 사라져가는 과거의 일상과 중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카마츠 토모키와 조준용이 장소가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도시 경관으로 은유하는 한 편 이재욱은 이 도시의 어느 장소에 거듭해서 발생했던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한다. 광화문 앞 그곳에는 오늘도, 몇 년 전에도, 십년 전에도, 수십 년 전에도 통제 라인-차벽-이 세워졌다. 한 장소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경계선이 세워지고 허물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그 반복을 목격하면서 충돌과 통제의 장소, 광화문을 기억할 것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6팀의 작가들은 집단으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기록하고 기억한 도시의 어느 장소를 현재에 불러낸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도시의 장소는 자본과 권력, 때로는 불가항력에 의해 변화를 겪는다. 혹은 그 모습을 바꾸었더라도 여전히 한 장소에는 수많은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해 그들과 함께 그 장소의 기억을 더듬고, 장소가 쌓아 온 시간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임보람
원출처 : http://www.placemak.com/index.php?mid=board_qhUl77&document_srl=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