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데시벨 midday decib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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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도시 속 건물의 외벽이나 도로 바닥, 혹은 그 안의 부산물을 바라본다. 어떤 순간의 그림자는 그 위로 색을 더하거나, 선과 면으로 또 다른 모양을 만든다.
빠르고 시끄럽게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새로운) 형상들은 가만히 말을 건다. 소음이 잦아들고 정적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그림이 되는 순간이다.
캔버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직 수평의 균형을 조율하거나 화면을 가르며 새롭게 조형성과 리듬을 만든다. 재현을 붙잡은 상태의 그림 위로 붓질과 물성을 통해 처음 장면을 마주하던 때의
분위기를 복원한다. 온도, 빛, 공기 등 잡히지 않는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그것을 그려내기 위해 모든 면에 겹겹이 붓이 닿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는 작은 소리들이 그러하듯,
붓질로 가득 채워진 면의 감각은 비로소 그림을 가깝게 마주할 때야 느껴진다.
데시벨은 소리의 단위를 뜻하는 동시에 어떤 양의 상대적 크기를 의미한다. 무한대의 풍경에서 일부를 잘라내 한정된 면으로 옮기는 과정은 결국 그것을 담는 크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전 전시(<오후 서너 시, 벽과 벽 사이>, 누크갤러리, 2019)에서는 두 공간을 서로 크고 작은 그림들로 구성해 비교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한 공간에서 캔버스의 사이즈를 반복, 변주하는데 집중한다. 크기에 대한 일련의 규칙을 따라 나열하거나 높이를 다르게 함으로써
새로운 묶음을 만들고 그림과 그림, 그림과 공간을 연결하는 리듬을 발견하고자 한다.

/ 이현우

원출처 : http://www.yeemockgallery.co.kr/exhibitions_current.ph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