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환영, welcome 그리고 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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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6년 6월 10일 ~ 2016년 6월 19일

전시장소 : 북아현동 재개발지구 1-1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11바길 12-27

‘삶의 환영’은 설계 스튜디오 안의 작업을 철거 촌으로 옮긴 ‘건축공방’의 기록 작업이다. 7월초면 완전히 사라질 ‘북아현로11바길 12-27’ 집은 건축가, 설치예술가, 음악가에 의해 20일간 생명이 연장된다. 건축공방의 심희준, 박수정은 수의를 입히듯 집안을 단장하고, 이창훈은 다양한 매체로 집과 공동체의 관계를 시각화하고, 김준은 적막 속에서 채집한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전시 첫날 바이올린 심혜선과 첼로 심혜원은 정치적 격동기인 1927년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을 연주한다. 건축, 설치예술, 음악이 같이하는 ‘집의 장례식’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읽고, 미래를 실험하는 즐거운 굿판이다.

땅과 삶을 기록한다는 것

아현동 웨딩타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초여름 뙤약볕 아래 가파른 동네를 올랐다. 구불구불한 길 양편에 우뚝 선 초등학교, 교회, 아파트 현장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자 사진에서나 본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사지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창문이 모두 뜯겨진 기이한 풍경이었다. “접근 금지, 북아현 1-1 구역 주택재개발현장”이라고 쓰인 공사장 가름막 뒤로는 인기척이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가니 한쪽 편으로 부서진 집들의 잔해가 드러났다. 집들과 함께 지리정보도 지워졌는지 스마트폰 앱조차 심희준, 박수정 대표가 찍어준 주소를 찾지 못해 결국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다른 곳은 골목길 감나무 아래 근사한 2층집이었다. 뜯겨진 창틀 밖으로 병풍처럼 도열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부서진 콘크리트와 벽돌, 축대위로 자라난 잡초 덤불이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맞바람 소리 이외에는 자동차와 사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너무나 적막했다. 초고밀 도시 한가운데 있는 폐허의 섬처럼. 건축가 심희준, 박수정이 ‘소리’를 다루는 작가와 공동 작업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이다.

지난 수십 년간 주변에서 반복된 흔하디흔한 풍경이다. 서울에서 1970년대부터 2010년대 초까지 주택재개발과 주택재건축사업으로 지형이 송두리째 바뀐 땅은 여의도 크기의 14배(40.8km2)에 달한다. 재개발, 재건축사업보다 덩치를 키운 뉴타운사업구역은 2011년 11월 기준 1,300여개에 달했다. 30년 동안 갈아엎었던 땅보다 1.5배 넓은 엄청난 면적(61.6km2)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신화에 금이 가지 않았다면 아현동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을 땅이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기공식 사진이나 백서의 통계자료를 제외하면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삶의 기록은 빈곤하다.

과거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은 역사학자의 몫이다. 그런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은 이론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조차 입맛에 맞게 윤색할 수도 미화할 수도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쓴 사마천의 사기도 모두 사실이었을까?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엄청난 권력을 쥐는 역설이 여기에서 성립된다. 역사 논쟁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기록은 많고 다양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깊고 풍성해야 한다.

기록은 공적 작업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사적 행위다. 본다는 것 자체가 관점이다. 똑같은 카메라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가 나오는 것은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관점, 눈, 손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포착한 장면은 기록이라기보다는 재해석과 재구성이다. 예술가들에게 기록은 현재를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것을 발굴하는 자기 발견적(heuristic) 도구다.

‘삶의 환영’은 설계 스튜디오 안의 작업을 철거 촌으로 옮긴 ‘건축공방’의 기록 작업이다. 7월초면 완전히 사라질 ‘북아현로11바길 12-27’ 집은 건축가, 설치예술가, 음악가에 의해 20일간 생명이 연장된다. 심희준, 박수정은 수의를 입히듯 집안을 단장하고, 이창훈은 다양한 매체로 집과 공동체의 관계를 시각화하고, 김준은 적막 속에서 채집한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전시 첫날 바이올린 심혜선과 첼로 심혜원은 정치적 격동기인 1927년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을 연주한다. 건축, 설치예술, 음악이 같이하는 ‘집의 장례식’이다.

건축가 심희준과 박수정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14년 새건축사협의회가 기획한 젊은 건축가 집담 프로그램 [10 by 200]이다. 강연과 토론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특집호를 읽고 척박한 건축 생태계에서 자신의 건축언어를 찾아가는 솔직하면서 치열한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 후 2016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을 기획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건설한국’의 동력이자, 한국인의 용적률을 향한 집단적 욕망을 사회경제적, 일상적, 창의적 관점에서 조명한 전시의 36개 대표 사례 하나로 건축공방의 ‘화이트큐브’를 꼽았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일대는 ‘허가방’ 사무소와 ‘집장사’들이 지은 중층주택 밀집지다. 재개발구역이 해제되면서 흔히 ‘빌라’라고 불리는 다가구, 다세대주택은 새로운 ‘정비’와 ‘재생’이 필요하게 되었다. 건축공방의 ‘화이트큐브 망우’는 용적률의 양의 게임을 질의 게임으로 바꾼 사례다. 그들이 쓴 작품 설명은 프라이버시, 채광, 발코니, 주차장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소박한 내용이다. 어렵고 거창한 수사가 없다. 작업의 자양분과 저장고가 주변에서 접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일상을 깊게 관찰하는 안목은 창조적인 작업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그들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출발은 진부한 일상이지만 이들의 행보는 건축, 조경, 설치, 리노베이션, 전시에 이르기까지 넓다. 주거, 사무, 레저 공간의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참여한다. 건축공방의 브랜드 작품 중의 하나인 ‘글램핑 아키글램’은 대중의 잠재적 욕구를 기하학적이며 구축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에 담아낸 수작이다.

나는 ‘삶의 환영’이 옛것을 낭만적으로 회고하는 작업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읽고, 미래를 찾는 연구일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도시 건축을 모색하는 유연하고 즐거운, 그들만의 독특한 실험일 것이다.

글_김성홍
2016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원출처 : http://www.archiworkshop.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