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5-2019-11-19
김녕만
■ 전시 서문
사진이 만드는 기억, 기억이 만드는 사진
사진기자와
잡지 발행인을 거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녕만의 지난 오십 년은 온전히 사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는
1970년대에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사진을 업으로 삼아, 사진으로만 평생을 살아온, 그야말로 사진 전문가다. 사진을 찍을 때
그의 눈빛은 매섭고 발걸음은 날렵하다. 피사체를 향해 단호하게 셔터를 누르면서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그가 어떻게 훈련된
사람인지를 짐작케한다. 카메라를 든 그는 멈춰서 있는 법이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눈과 발은 명쾌함과 성실함이 배인 사진을
만들어낸다. 사진을 찍지 않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만면에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준비된 유머를
쏟아내는 것은 인간관계에도 최선을 다해온 그만의 오랜 습관인 듯하다. 언제 어디서든 그가 있는 자리에서 잠시라도 대화가 끊겨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그의 유머 족보가 풀린다. 그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사진을 사랑하지만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한다.”는 그의 블로그 대문에 걸린 문장이 생각난다. 그는 천생 따뜻한 사람이다.
<김녕만, 기억의
시작>은 가난한 시골 청년이 열정으로 무장하고 빌린 카메라로 공모전에 낼 사진을 찍고, 암실도 없이 한밤에 이불 속에서
현상한 필름으로 사진을 만들고, 그 상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다. 말만 들어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한국에 도시보다 농촌이 많던 시절, 가난이 부끄럽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평범하고 당연했던 시절, 그래서 사람 냄새가 더
진했던 시절, 이제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면 스르르 사라져 버릴 시절이다. 인간의 기억은 지극히 불완전할 뿐 아니라 유동적이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절대 기억하지 못할 장면이 그의 사진 속에 있다. 오십 년의 시간을 묵혀 빛을 보는 ‘사진이 만든 기억’은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다. 초가지붕이며 신작로, 빨래터와 장터, 하굣길의 아이들과 줄다리기하는 마을 사람들, 어느 것 하나 바래지도
않고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먼 옛날 그 사진이 찍히던 순간의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리고 이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눈과 발이 남긴 흔적일 뿐이다.
한 작가의 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굽이굽이 흘러온 궤적을 추적해야
하고, 켜켜이 쌓인 시간의 단면을 보아야 하고, 종횡으로 관통하는 특성을 찾아야 하고, 시대적 맥락 속에서의 지위도 살펴야 한다.
시작을 보고 나니 살펴야 할 축이 더 길고 복잡해졌다. 김녕만의 초기 사진은 스승이었던 임응식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이어받은
소재에 대한 천착, 학생 시절 이후 인생의 멘토였던 이명동의 영향을 받은 관찰 방식과 태도, 그리고 20 세기초 서양 모더니즘의
양식적 실험을 떠올리게 하는 프레이밍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토착화된 리얼리즘과 전문성에 대한 확신과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결정적 사건 없이도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발현된 것이다. 누군가 김녕만을 사진기자로 기억하든 사진잡지 발행인으로
기억하든 작가로 기억하든 자유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예외 없이 다가올 시간 속에서 달라질 것이다. 다만 오늘은 그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어서 그를 기억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신수진 (램프랩 디렉터 /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