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 2016년 6월 18일 ~ 2016년 7월 17일
전시장소 : 갤러리아쉬 서래,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27길 3, 지하1층
Panoramic Sense (감각의 전경)
2016. 6. 18. Sat – 7. 17. Sun / 전시중 휴관일 없음
(am 11:00 – pm 6:00)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5-8
(헤이리예술인마을 1652-191)
참여작가_강성은, 설박
2016. 6. 18. Sat – 7. 17. Sun / 전시중 휴관일 없음
(am 11:00 – pm 6:00)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5-8
(헤이리예술인마을 1652-191)
참여작가_강성은, 설박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Panoramic Sense (Because It‘s there.)
변변찮은 김 박사의 이유(픽션),
그는 오랜 세월 나무를 연구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그의 꿈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했으나, 그림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주위의 간접적인 동시에 직접적인 충고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고교 시절 3학년 1반 대다수가 공무원과 회사원이 희망이었던 때, 짝꿍을 따라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실력은 얻었으나, 정작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조경’과 ‘산림’중 그저 나무가 많은 느낌이 드는 산림학과를 선택했고, 현재는 은행나무 권위자가 되었다.
가끔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표창을 수여하면,
무언가 드라마틱하고 무게감 있는 스토리로 자신의 당위성을 표명해야 했지만,
그런 커다란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기에 그는 그저 “감사합니다”로 발표의 말미를 장식했다.
혹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앞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든지,
나무와의 숙명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조언을 해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일어난 현상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믿는 김 박사는 과거의 있지도 않은 일을 재창조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의 책상에 놓인 필기도구가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과 종이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나무를 연구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그의 꿈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했으나, 그림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주위의 간접적인 동시에 직접적인 충고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고교 시절 3학년 1반 대다수가 공무원과 회사원이 희망이었던 때, 짝꿍을 따라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실력은 얻었으나, 정작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조경’과 ‘산림’중 그저 나무가 많은 느낌이 드는 산림학과를 선택했고, 현재는 은행나무 권위자가 되었다.
가끔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표창을 수여하면,
무언가 드라마틱하고 무게감 있는 스토리로 자신의 당위성을 표명해야 했지만,
그런 커다란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기에 그는 그저 “감사합니다”로 발표의 말미를 장식했다.
혹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앞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든지,
나무와의 숙명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조언을 해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일어난 현상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믿는 김 박사는 과거의 있지도 않은 일을 재창조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의 책상에 놓인 필기도구가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과 종이뿐이라는 것이다.
담백한 그림의 이유(논픽션),
위 이야기는 아름다운 현실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어떠한 거추장스러운 꾸밈도 없고, 진솔한 행위만이 남는다.
어느 스님은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라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산악인은 “산이 그 곳에 있어 오른다.” 라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회자하여 명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속에 이른바 ‘결정적 순간’은 꼭 스펙타클하거나, 화려한 그 어떤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 세상의 위대한 어머니들은 지루한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며 한세월을 견디어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또는 세속의 특별난 스토리는 없지만,
생의 시작과 끝을 보면 그 평범함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또한 감히 평범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느낄 수 있다.
위 이야기는 아름다운 현실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어떠한 거추장스러운 꾸밈도 없고, 진솔한 행위만이 남는다.
어느 스님은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라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산악인은 “산이 그 곳에 있어 오른다.” 라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회자하여 명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속에 이른바 ‘결정적 순간’은 꼭 스펙타클하거나, 화려한 그 어떤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 세상의 위대한 어머니들은 지루한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며 한세월을 견디어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또는 세속의 특별난 스토리는 없지만,
생의 시작과 끝을 보면 그 평범함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또한 감히 평범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느낄 수 있다.
그들(강성은, 설박)이 그리는 그림에 호화찬란한 모습은 없다.
역시 역사를 가로 질로 범 미래적 가치를 제시하는 무겁기만 한 철학 또한 없다.
다만, 그 풍경들이 말 그대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매일 지나는 곳의 모습, 지난 시간 위대한 의미에서 이제는 누군가의 소소한 산책로가 된 산이다.
하지만, 거대한 것은 없지만, 보통과 구별되게 하는 작가의 특별한 시선은 분명 존재한다.
정형화된 집과 구조물을 더욱 세심히 줄을 맞추어 그리는 것(강성은)과 콜라쥬 기법으로 산세 속에 또 다른 산세를 이어가는 것(설박)들은
그들이 겉치장하는 것에 소질이 없는 작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담백한 의미를 찾는 것에 더 많은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하고, 멋들어지는 모습들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우리가 그림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을 품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매일 먹는 쌀밥과 같은 담백함 때문일 것이다.
결국, 소소한 낱알이 모여 한 그릇의 밥공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평범하지만, 진솔한 위대함이 그곳에 있다.
역시 역사를 가로 질로 범 미래적 가치를 제시하는 무겁기만 한 철학 또한 없다.
다만, 그 풍경들이 말 그대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매일 지나는 곳의 모습, 지난 시간 위대한 의미에서 이제는 누군가의 소소한 산책로가 된 산이다.
하지만, 거대한 것은 없지만, 보통과 구별되게 하는 작가의 특별한 시선은 분명 존재한다.
정형화된 집과 구조물을 더욱 세심히 줄을 맞추어 그리는 것(강성은)과 콜라쥬 기법으로 산세 속에 또 다른 산세를 이어가는 것(설박)들은
그들이 겉치장하는 것에 소질이 없는 작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담백한 의미를 찾는 것에 더 많은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하고, 멋들어지는 모습들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우리가 그림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을 품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매일 먹는 쌀밥과 같은 담백함 때문일 것이다.
결국, 소소한 낱알이 모여 한 그릇의 밥공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평범하지만, 진솔한 위대함이 그곳에 있다.
원출처 : http://www.galleryahsh.com/index.php?mid=Exhibition&document_srl=39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