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조선 초 불상, 조선 시대 함경도 지도(관북여지도)도 함께 보물 지정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약 1,500년 전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파손되지 않고 완벽한 한 짝으로 출토된 거북장식 가야도기 1건을 비롯해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안에서 발견된 고려~조선 초기 불상 4구, 함경도 지역의 주요 요충지를 그린 조선 시대 지도(관북여지도)를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제2059호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釜山 福泉洞 十一號墳 出土 陶器 龜裝飾 圓筒形 器臺 및 短頸壺)’는 가야 시대 고분 중에서 도굴 당하지 않은 복천동 11호분의 석실 서남쪽에서 출토되어 출토지가 명확한 5세기 유물이다.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도기(陶器)가 대부분 깨지거나 훼손된 사례가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도기는 한 쌍의 기대(器臺, 그릇받침)와 항아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발굴되어 이 시대 도기의 제작수준을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며, 당당한 모습에 거북이 토우 한 마리를 부착시킨 중앙 기대가 눈에 띄는 모양새다. 이처럼 삼국 시대 토우(土偶) 중 거북이 토우가 붙어있는 것은 이 도기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 부산 복천동 11호분은 1980∼1981년까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석실분으로, 5세기 경 부산에 있었던 가야 세력의
수장급 인물의 무덤. 인근의 복천동 10호분과 함께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을 이루는 대형 고분임이 밝혀졌으며, 그 중
11호분은 가야 고분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되었음
* 토기(土器)와 도기(陶器): 토기는 흙으로
그릇모양을 빚어 800〜900도 온도에서 구워 흙의 질감이 남아 있는 것을 말하며, 도기는 유약을 바르고 1,5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반들거리고 유리질화된 것을 말함.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는
고온에서 구워 겉면이 유약처럼 시유된 ‘도기’에 해당됨
그릇받침과 항아리의 규모가 크고
형태가 조화롭고 안정적인 점, 높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자연스럽게 시유(施釉)되어 견고하게 제작된 점, 11단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다양한 종류의 투창(透窓, 구멍)을 뚫고 물결과 지그재그 등 가야도기에서 많이 쓰인 문양을 새겨 조형성이 우수한 점 등
여러 면에서 가야도기의 특징과 삼국 시대 토기가 도기로 넘어가는 기술적 성과를 엿볼 수 있다.
* 시유(施釉): 기물의 표면에 유약을 입히는 일. 유약은 유리성분이 많은 흙과 이를 녹여주는 용융제, 색깔을 내는 발색제 등을 물에 섞은 혼합물을 말함
손상되지 않은 완전한 형태와 거북이의 조형성, 안정된 조형 감각과 세련된 문양 표현 등으로 볼 때,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도기로 꼽을 수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할 충분한 학술‧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보물 제2060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出土 金銅佛像 一括)’은 무량사 오층석탑에 봉안됐던 금동보살좌상(1구)과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3구)으로서, 1971년 8월 오층석탑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과 1층 탑신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1구는 고려 시대의 금동보살좌상이며, 3구는 조선 초기의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 탑신(塔身)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좌상은 발견지가 분명한 고려 전기 보살상으로, 자료의 한계로 인해 지금까지 자료가 부족한 고려 전‧중기 불교조각사 규명에 크게 기여할 작품이다. 1층 탑신에서 발견된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선 초기의 뚜렷한 양식적 특징을 갖추고 있어 이 시기 탑내 불상 봉안(奉安) 신앙 및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된 탑 봉안 아미타여래삼존상 중 구성과 도상이 가장 완전하고, 규모도 크며 상태도 양호하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은 조성 배경을 알려 줄만한 기록과 명문이 없으나 발견지가 분명한 불상들이라는 점,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도 조각기법이 우수하다는 점, 당시 불교 신앙 형태의 일면을 밝혀준 준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예술적 의미가 크므로 보물 지정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061호 ‘관북여지도(關北輿地圖)’는 조선 시대 관북(關北) 지방인
함경도 마을과 군사적 요충지를 총 13면에 걸쳐 그린 지도집으로, 지리적 내용과 표현방식 등으로 보아 1738년(영조
14년)~1753년(영조 31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이 2007~2008년 옛지도 일괄공모를 거쳐 신청
작품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실시해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는 역대 지도 35점을 보물로 지정한 이후,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를 평가받은 고지도이다.
*관북(關北) 지역: 한반도의 북동부 지역을 말하는 조선시대 용어로, 주로 함경남북도를 일컫는 지리적 명칭
*관북여지도에 그려진 지역: 1면 길주목(吉州牧), 2면 명천부(明川府), 3면 경성부(鏡城府), 4면 부령부(富寧府), 5면
무산부(茂山府), 6면 회령부(會寧府), 7면 종성부(鍾城府), 8면 온성부(隱城府), 9면 경원부(慶源府), 10면
경흥부(慶興府), 11면 함관령(咸關嶺), 12면 마운령(磨雲嶺), 13면 마천령(磨天嶺)
‘관북여지도’는 1719년(숙종 45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이삼(李森, 1677~1735)의 지시로 제작된 함경도 지도집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작품으로, 1712년(숙종 38년) 조선과 청나라 정계(定界)를 계기로 함경도 지역 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각 지역마다 한양으로부터의 거리, 호구수(戶口數), 군사수(軍士數), 역원(驛院, 여관의
일종) 등 관련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이삼(李森, 1677∼1735): 조선 후기 무관(武官). 무인
가문의 전통을 따라 무관의 길을 걸어 평안도병마절도사, 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 무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음. 장수로서의 기품을
간직한 당대의 명장이자, 군사지략과 무예·군법·군제에 조예가 깊은 학자, 군선과 무기 제작에도 뛰어난 기술을 가졌던 인물로 평가됨
이 지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봉수(烽燧) 사이의 연락 관계를 실선으로 직접 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함경도 지도 뿐
아니라 기타 지방지도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참신하고 새로운 방식이다. 아울러 봉수 간의 거리를 수치로 제시하여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하였다. 화사한 채색의 사용, 회화적으로 그려 실제감을 살린 지형(地形)의 모습, 강물 표현 등은 도화서(圖畵署) 화원의
솜씨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 봉수(烽燧): 횃불과 연기로 긴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 통신제도
‘관북여지도’는 현존하는 북방 군현지도(郡縣地圖) 중 정밀도와 완성도가 뛰어나고 보존상태도 매우 좋은 작품이다. 봉수(烽燧) 간의 거리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점, 봉화(烽火)의 신호법 등을 자세하게 표시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지도 발달사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국내외 현존하는 약 8점의 관북여지도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