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빔 벤더스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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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화) ~ 2020-08-02(일)

상영작

페널티 킥을 맞는 골키퍼의 불안 (1971) / 도시의 앨리스 (1974) / 시간의 흐름 속에서 (1976)
미국인 친구 (1977) / 물 위의 번개 (1980) / 사물의 상태 (1982) / 파리, 텍사스 (1984)
도쿄가 (1985) / 베를린 천사의 시 (1987) / 이 세상 끝까지 (1991) / 멀고도 가까운 (1993)
리스본 스토리 (1994) / 구름 저편에 (1995)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1999)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2003) / 돈 컴 노킹 (2005) / 피나 (2011) /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2014)

주요정보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박인호 (영화평론가)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장 뤽 고다르 특별전 II’에 이어 고다르와 함께 유럽에서 또 다른 새 물결을 일으킨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 회고전을 엽니다. 서사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넘어서 서정과 사색, 일상과 초월, 부드러움과 잔혹함, 공감과 통찰, 불연속과 파열과 정지가 교차하는 뛰어난 영화 이미지를 선사해 온 빔 벤더스는 20대 초반부터 75세에 이르는 오늘에까지 세상 곳곳을 누비며 쉼 없이 창작 활동을 지속해 온 위대한 시네아스트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위대한 로드 무비의 작가입니다. 

벤더스의 대표작에 속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에는 사소하지만 잘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가 나옵니다. 주인공인 브루노는 독일 통일 이전인 1970년대 중반, 동독에 인접한 서독의 작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순회 영사 기사입니다. 영사 장비를 잔뜩 실은 대형 트레일러가 그의 집입니다. 한 장면에서 브루노는 모래 언덕이 보이는 곳에 차를 멈춘 뒤, 모래사장으로 가서 대변을 봅니다. 카메라는 그의 옆에 서서 대변이 나오는 장면, 그가 휴지로 뒤를 닦은 뒤 모래로 덮는 장면을 지켜봅니다. 일을 마친 뒤 브루노는 트레일러로 돌아갑니다. 

이 장면은 빠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극히 작은 일상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그러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길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은 길 위에서 먹고, 길 위에서 자고, 길 위에서 배설해야 합니다. 비록 빔 벤더스의 오랜 파트너 로비 뮐러가 촬영한 밤 장면들이 때로 숨 막힐 만큼 아름답다 해도, 벤더스에게 그것은 낭만이 아닙니다. 영화의 주제가처럼 사용된 로저 밀러의 컨트리 ‘길의 왕(King of the Road)’은 “다 떨어진 양복에 헤진 구두를 신고 꽁초를 피우지만 나는 길의 왕이라네.”라고 명랑하게 노래하지만, 브루노에겐 그런 명랑함이 없습니다. 길 위의 삶은 집의 사람이 실감할 수 없는 온갖 불편과 불안, 무엇보다 뼈저린 고독을 짊어지고 견뎌야 하는 누추하고 스산한 삶의 방식입니다. 브루노는 과묵하게 그 삶을 살아 냅니다. 왜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했는가를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길의 왕은 내력을 묻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길의 왕들(Kings of the Road)>이며, <도시의 앨리스>(1974) <잘못된 움직임>(1975)와 함께 벤더스의 ‘로드 무비 3부작’이라 불립니다. 이 3부작은 감독 빔 벤더스에 로드 무비의 왕이라는 칭호를 안겨 주게 됩니다. 하지만 실은 <파리, 텍사스> <이 세상 끝까지> 등 그의 많은 영화들이 떠도는 자, 거처도 목적지도 잃은 자의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지닌 오늘의 우리가 벤더스의 영화에 공명한다면 그의 유랑자에게서 우리가 내면적으로 겪고 있는 방향 상실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빔 벤더스의 영화 세계를 다소 감상적인 어조의 방랑기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화를 유랑의 영화라고 달리 말할 수 있는데, 유랑은 주인공의 물리적 행적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지와 이야기 사이를, 혹은 이미지의 정지와 운동 사이를,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를 끊임없이 유랑하며 영화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사해 왔습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욕망과 구원, 유대와 단절, 내면의 심연과 외부 세계의 복합적 관계, 그리고 화려한 오늘과 음습한 과거를 유랑하며, 현대인의 빼어난 영화적 초상을 제공해 왔습니다. 아마도 <베를린 천사의 시>는 이러한 미학적 관심사들과 그의 숙련된 예술가적 역량이 한데 모인 벤더스의 대표작일 것입니다. 

한편 벤더스는 세상 곳곳을 누비며 <도쿄가> <도시와 옷에 관한 노트> <물 위의 번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블루스: 소울 오브 맨> <피나>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등의 다큐멘터리 혹은 유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화뿐만 아니라 위대한 예술 혹은 예술가들에 대한 귀중하고 흥미로운 기록을 남겨 왔습니다. 벤더스는 예술들 사이를 쉼 없이 유랑해 왔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유랑의 감독 빔 벤더스가 만든 18편의 영화를 통해 정박을 모르는 위대한 유랑의 정신을 만나시길 빕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

원출처 : http://www.dureraum.org/bcc/mcontents/progView.do?rbsIdx=61&progCode=202007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