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서 출토…‘철의 왕국’가야의 유리 공예 기술 새롭게 조명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가야가 다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나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도 완전하여 역사‧학술‧예술 가치를 지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 곡옥이나 둥근 옥을 만들어 목걸이로 착용했다. 구슬의 재질도 금, 은, 유리, 금박 입힌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등으로 다양하며, 형태도 판옥(板屋, 편평하게 가공한 옥제품), 곡옥, 대롱옥(대롱처럼 기다란 형태의 옥제품), 다면옥(多面玉, 여러 면을 깎은 옥제품) 등 다채로운 것이 특징임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金官伽倻) 시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에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하다가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 금관가야: 6가야(六加耶)의 하나로,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존속했음. 금관가야라는 이름은『삼국유사(三國遺事)』오가야조(五伽耶條)에 인용된 ‘본조사략(本朝史略)’에서 유래되었으며, 가락국(伽落國; 駕洛國)이라고도 했으며,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大加耶) 또는 본가야(本加耶)라고도 불렸음
*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3∼5세기 무렵 금관가야 시대 수장층(首長層)의 공동묘지. 한국고대사에서 공백으로 남은 4세기 전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귀중한 고분임. 1991년 사적 제341호로 지정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되었고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으며,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은 것으로 보아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마노(瑪瑙): 수정과 같은 석영광물로서,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腦髓; 머릿골)를 닮았다고 해 ‘마노’라고 부름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당시 유리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구슬제작 방법: 고대 구슬 제작방법은 두 가지 종류가 있음. 하나는 주형(鑄型) 기법으로, 일정한 틀에 재료를 녹여 부어서 만든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잡아 늘리기 기법’으로, 녹인 유리질 속에 막대를 넣고 잡아 늘려 식힌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른 방식. 가야 시대 유리구슬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 만들었음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 발굴조사를 통해 나온 터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 금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품으로 역사ㆍ예술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또 다른 목걸이인「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에서 발굴되었다. 양동리 고분 270호는 인접한 여러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고배(高杯, 높다리 그릇)를 비롯해 토기류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고분으로 꼽힌다.
* 김해 양동리 고분군: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철기시대 무덤군. 1984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했으며 이후 1990∼1996년의 기간 동안 동의대학교박물관이 4차에 걸쳐 발굴조사해 557기의 유구에서 5,100여 점의 유물을 출토했고 특히, 여러 색의 크고 작은 유리구슬들을 다량 발견했음. 2004년 사적 제454호로 지정
*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 무덤 속 관을 넣어둔 묘실을 나무로 짜서 만든 무덤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水晶)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梁山)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또한,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美的) 감각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공예품으로서 기술‧예술 수준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대(漢代) 청동 세발 솥(靑銅鼎, 청동정)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曲玉)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도 발굴해서 얻은 유물이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수정제 곡옥이나 대형 유리제 곡옥이 한꺼번에 발견된 희귀한 사례로서 중요하다. 또한,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의 세련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3세기 금관가야의 지배층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귀중한 장신구로서 보물로 지정할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되었고,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며,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또한,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작품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 중국의 역사서『삼국지(三國志)』의「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기록: “(가야인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 이영주위재보, 혹이철의위식, 혹이현경수이, 부이김은수위진)”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김해 양동리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며, 앞으로 정부혁신의 하나로 가야를 포함한 삼국시대 고고유물의 가치를 밝히는데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