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4 – 5.23
협력기획: 김현주
주관: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포스터 디자인: 박정은
오픈시간: 11: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동경(longing), 진행형의 첫 매듭
글 김현주(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토악질하듯 살아가는, 그 신 내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몹시 부럽다. 그래서 사진을 “욱여넣고…게워내었다”1)고 말하는 곽동경에게 동류의식을 느낀다. 몇 년 전 그에게 사진을 보고 싶다 어르고 달랬더니 그는 자정을 넘기고도 두어 시간을 더 눌러 채우고야 보여주면서도 채 보기도 전에 삽시간에 거둬들였다. 그때 본 작업이 〈510kilometer〉 연작이다. 사대강 사업이 한창인 낙동강 줄기 따라 차도 없이 걸어 찍어 나간 사진이다. 작년에는 내년에도 개인전을 못한다면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구슬려서 지난 사진들을 들춰내게 했다.2) 첫 전시인데 초췌해 보이는 그가, 바로 나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번 전시 제목 《틸틸미틸》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곡 『파랑새(L’Oiseau Bleu)』의 남매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의 이름에서 따왔다. “뒤집어진 공룡, 베란다가 훨씬 따뜻하다, 유령매점, 티오황산나트륨”3) 등 아무 말을 쏟아내다가 “틸틸미틸”에 닿았다. 굳게 믿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라는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었음4)을 알았을 때 파사삭 금 간 유년 추억 하나 때문에, 그리고 파랑새를 찾아 떠난 모험에서 결국 그 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해사한 교훈을 더 이상 믿지 않는 허망함을 눌러 이 제목에 담았다. “팔다리 잘린 채로 무엇을 말한다고.” 그래서 그는 말하기 대신 사진을 찍는다. “이번 전시의 컨셉은 무엇일까요?” 내게 묻길래 그걸 왜 내게 묻냐는 말 대신 ‘창고대방출’이라 얘기했다. 스스로 넝마주이라 말하지만 그가 호더(hoarder)이길 바라지 않는다. 십여 년에 걸친 수집과 축적에 물길을 터줘야 다음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들어찼던 사진들 중 크게 네 가지 범주를 추려 선보인다. 전시장 동선상에서는 근작에서 전작으로인데 가끔 음악이나 영상을 앞뒤로 건너뛸 때 “앞으로 돌려봐, 뒤로 돌려봐”에서 소통 오류가 나듯 앞에서 뒤로이든 뒤에서 앞으로든 모두 어제까지의 곽동경이다. 오늘부터의 곽동경은 이제 사진을 보고 또 이 글을 읽은 이들에게 각기 달리 발아할 터이다.
전시장 도입부에 자리한 〈날숨〉 연작은 처리상으로는 간결하다. 렌즈 앞에 숨을 불어넣어 필터 처리를 해서 찍은 바다 사진이다. 올해 초 부산 영도에 대한 리서치에 함께했고 《전승의 영도(Degree Zero of Transmission)》5)라는 제목을 단서로만 공유한 채 나는 글을, 그는 사진을 찍어 패치워크했다. 그곳을 혹은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가 공통의 숙제였는데 그는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만만치 않게 고민한 듯하다. 날것을 직시하기도 쉽지 않지만 날것의 모듬이 그 자체로 온전히 힘을 갖는 것도 아니다. 무수한 지표를 담는 것 대신 근현대 영도보다 더 오래되었을, 부둣가 바닷물이 그의 선택지였고 한낱 입김으로 소위 ‘뽀샵’ 처리를 했는데 그래서 이 바다가 한층 아름다워졌는가 하면 그럴 리가 없다. 그만이 포착해 낼 수 있는 세상이 있을 리 없고 치장, 분장 또한 곽동경스럽지 않다. 숨 쉬는 정도의 운신이 〈날숨〉 연작이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 숨이 차면 숨쉬기를 잊어야 힘이 덜 들 듯 각고의 서사가 없는 일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평안하다. 이 정도의 감각과 태도도 무리 없음을 그가 체화했으‘리라’6).
또 다른 연작인 〈나머지 정리〉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더니 그는 “피제수=몫×제수+나머지”를 상기시켰다. 나머지를 찍고 있지만 관심사는 “몫과 피제수를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한다. 갑자기 웬 산수 싶으면서도 그가 이과생이었음을, 정확히는 환경공학과 출신7)임이 떠올라서 더 묻지는 않았다. 고등 수학까지는 내겐 벅차고 산수에서 나머지 정리는 어떤 의미일까 내 방식대로 이해해 볼 때 몫이 말 그대로 오롯한 자리를 갖고, 제수도 능동의 기능을 가질 때 나머지는 늘 오도 가도 못한 채 남겨져 있다. 그래도 이 연산에서 나머지가 있어야 피제수를 지칭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정리〉는 한 조각 퍼즐을 만지작거리는 모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연작을 바라보면 사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결락(缺落)에 관심이 간다. 열차 운행이 드문 민둥산역 인근 철도아파트는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는 민원이 빗발치지만 사진에 소란스러움은 담겨 있지 않다. 개발에 격앙된 목소리는 인간의 것일 뿐 철도아파트 그리고 바투 붙어 자라는 나무는 몫인 듯 나머지인 듯 세파와는 무관하다. 작가에게 이유와 서사를 묻는다면 답하겠지만 부러 묻기보다 내가 맞춰보고 싶어진다.
〈LAND landscape〉 연작은 쇠락해가는 전국의 놀이동산을 담고 있다. 가정사와 관련한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했다8)고 밝히고 있지만 이 연작은 과거 사연 이상의 동시성이 열화(劣化)된 상태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옛것을 담은 많은 사진들이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많은 사진이 무너져내리는 것들에 천착하지만 불온함은 추억팔이, 사진팔이에 있지, 팔고자 하는 그 한 줌이 없어 보이는 사진 앞에서 레트로(retro)나 뉴트로(newtro) 같은 수사는 천박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풍경 사진이라고 하면서도 자칫 풍경의 퍼스펙티브 이상으로 비칠 기교는 엄격하게 거둬들인다. 모두에게 그때 그곳은 유지되어 있지만 이제 찾지 않아 오는 생경함은 각자의 감상이지, “세상은 예상대로 평온”하다. 연작으로서 잠정적으로 마무리가 된 것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각기 다른 이유로 〈LAND landscape〉와 〈510kilometer〉를 거론한다. 그는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선이 그어진 것과 사실상 완결 당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LAND landscape〉는 자문자답을 배양하는 실험실에서 피사체를 풍경과 임의로 합성해 내보는 과정적 절차이지 않을까 추측하는데9) 이로 인해 나머지 과제는 〈나머지 정리〉에서 풀어나갈 연산이다.
그는 이제 “나머지 정리를 탐험해 가겠다”고 말한다. 발명가 아닌 탐험가로서 눈높이를 조정하고, 자신은 “중립적으로 포기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하는 지점에 주목해 본다. 역할 설정과 장소 선점에서 일견 수세적이고 자기 확신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참 미덥다. 한없이 부풀어 오르지 않고 치기가 있다 하더라도 한 줌의 취기에서 만큼이라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의 어깨를 바람길만큼 가볍게 밀어준다. 래퍼에 버금가는 리듬감으로 밀고 당겨 엄정함 안에서도 그만의 힙합이 일기를. 그리고 언젠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남긴 “행복하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이라는 글귀가 『파랑새』와 《틸틸미틸》과 공명하여 오늘 내일의 소임에 임하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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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 중 큰따옴표 안의 단어나 문장은 대체로 곽동경의 말과 글에서 따왔다.
2)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예술한담》(기획팀: 박미연, 양정애, 김현주, 곽동경)을 통해 2020년 11월 22일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 자리임을 밝힌다.
3) 제목으로 거론된 것들을 언젠가 곽동경의 다른 전시 제목으로 마주칠지도 모른다.
4) 한국에서 『파랑새』 는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틸틸과 미틸은 일본어 번역본에서 음차한 치르치르(チルチル), 미치르(ミチル)로 알려져 있다.
5)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영도리서치(http://ydct.works/research_view.php?idx=11)에 수록되었다.
6) “―리라”는 곽동경의 일기의 마무리에 종종 등장하는, 그가 선호하는 어미다.
7) 곽동경은 사진을 전공하기 전에 환경공학과 출신의 이공대생이었다. 따라서 환경공학 전공과 사대강 사업 중 낙동강을 기록한 〈510 Kilometer〉 연작은 강한 인과 관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환경공학에서 사진으로 왔다는, 전이에 있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사진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넣는 것이라고 배웠다. 욱여넣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두 다리가 무거워지더라”고 적혀있다. 한편 대구를 이루는 쌍으로 “사진은 개인적인 메시지를 읊는 것이라고 배웠다. 게워내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두 팔이 무거워지더라”는 솔직한 심경도 작업노트에 담겨 있다.
8) 작가노트 상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주 7일 근무하셨다. 일요일이면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아들의 울음 섞인 청에 아버지는 일요일에 놀이공원에 동행하셨고 그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일요일 출근을 하시게 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갔던 어린이대공원이 그에겐 그 시절 디즈니랜드였고 원더랜드였으나 또한 아버지의 휴식과 어머니의 노동이 만든 네버랜드였던 것이다.
9) 우연한 일치이겠지만 오즈 야스지로가 《동경이야기》와 여타의 영화에서 그만의 다다미샷을 창출해 낸 것이 떠오른다. 오즈에게 일본 주택 실내가 가장 일본적 삶의 장소라면 〈LAND landscape〉의 놀이공원 또한 곽동경이 한국적 압축 경제 성장의 ‘일요일’을 ‘동경이야기’로 풀어낸 장소이지 않을까, 다소 비약 섞인 짐작에 닿는다.
원출처 : https://planbprojectspace.wordpress.com/2021/04/25/tyltylmyty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