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씨티 – 흐름들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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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영 개인전

<모던 씨티 – 흐름들의 공간>

 

전시일정: 2018.1.13 – 2.4

전시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가좌로 108-8번지 B1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오픈시간: 11:00 – 18:00 (월요일 휴관)

오프닝리셉션: 1월 13일(토) 오후 4시

 

* 전시 개최와 함께 차민영 작가의 지난 작품들과 관련 평론들이 수록된 작품집을 발간합니다.

* 작품집은 전시장에서 무료로 배포합니다.


<모던 씨티 – 흐름들의 공간>
전시기획/글    임보람

 

모던 씨티 – 현대 도시를 마치 하나의 시대를 대변하는 용어처럼 사용하게 된 것은 이동성과 공간의 패러다임으로 급격히 달라진 경관과 뿌리박힘으로 설명되는 전통적 장소의 개념에 대한 전이(轉移)-전위(前衛)에서 비롯된다. 현대 도시의 시대는 흐름들(flux-공간에서의 어떤 물리적 흐름, 유동)의 공간이 장소들의 공간을 능가했다. [1]

차민영의 가방-이것은 ‘여행가방’이다[2]– 안에 펼쳐진 건물의 집합체는 쉼없이 해체되고 재생되는 현대 도시의 사회학적 특성과 특정한 기호들로 분류된 도시의 경관에 대한 은유다. 현대 도시는 도시 형성의 계획적 담론에 의해 건설되고, 획일화된 분류를 통해 차별화하여 다룰 수 있는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기능주의적 관리에 성공했다. 끊임없이 생산을 비용으로 환원시키는 현대 도시의 체계에서 빌딩의 군집으로 경관이 완성된 것은 당연한 논리였다. 합리적인 도시 건설이라는 전략적 담론이 만들어낸 현대 도시의 조직은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토대로 빠르게 구성되었고, 그 사이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건, 즉 ‘공간’을 경관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차민영은 <토포필리아의 무대-Modern Tetris I, II>(2017)를 통해 도시의 재개발과 반복적 생산으로 획일화된 ‘아파트 공화국’의 경관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차민영의 가방 속 도시 경관을 현대 도시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해석하기만 해서는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덤덤히 ‘아름답기 때문에’라는 한마디를 덧붙이기 때문이다. 순간 이 집합적 기호들은 돌연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매혹적인 밤 풍경으로, 고풍스러운 한옥마을의 풍경으로, 재개발의 크레인 삽이 아직 채 뻗지 않은 진득한 삶의 골목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은 가방-정확히는 여행가방이다-안에 존재하는 경관이기에 가능하다. 왜냐하면 냉소적 시선을 잠시 거두고 바라본 이 집합적 경관은 도시 형성의 과정과 시스템의 논리를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는 여행자-이방인의 시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민영의 시선은 이방인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감성적이다. ‘토포필리아’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장소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 것은 작가 자신이 타인으로서 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관에 대한 애착이다. 이러한 작가의 애착은 <22-80번지>(2017)와 같은 작품을 통해 특정한 장소의 애착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장소와 장소상실>(2008)에서 렐프가 언급한, “장소는 개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원천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에 대해서도 정체감의 원천이 된다. 집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우리 정체성의 토대, 즉 존재의 거주 장소이다.”라는 의미를 대변한다.

즉, 차민영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상적 태도가 현대 도시의 경관에 대한 냉소적 시선에만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세밀하고 조밀하게 들어찬 도시의 내부-앞서 언급한 도시의 기본 요건, ‘공간’이다-에 좀 더 밀접하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열차 플랫폼, 막다른 골목, 여행가방 하나 덜렁 놓인 호텔방, 작업실, 달리는 지하철 차량 한 칸 같은 공간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현대 도시의 깊숙한 장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같은 것이자 동공-렌즈에 비춰지는 일상의 편린으로서 존재한다. 관람자는 작가가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격리된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로부터 일상적 공간이자 동시에 내부 세계인 이 공간들이 마치 손댈 수 없는 영역이요, 들여다보거나 훔쳐볼 수 밖에 없는 영역인 것처럼 인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들여다본 그 곳은 관람자-타인의 감각 어딘가를 찔러 공감을 이끌어내고, 결국 작가-재현(예술행위로서의)-공간-관람자를 하나의 선 상에 올려놓는다.

이렇듯 차민영의 일련의 작품들이 현대 사회의 비장소성, 무장소성, 장소상실 등 여러가지 사회학적 장소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반면 동시에 감성적으로 느껴지며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공간이 제시하는 내적 감수성 때문이다. 차민영이 재현해 놓은 공간에 대한 사유는 르네 듀보가 <내재하는 신>에서 언급한 “장소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그 당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나는 장소의 정확한 특징보다 그 장소들의 분위기를 더 잘 기억하고 있다.”라는 것으로, 사회학적 기호로서의 장소 라기 보다 오히려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의식적 공간이자, 의식의 흐름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이 전시의 개최와 더불어 작품집의 제작을 통해 차민영의 그간 작업들을 가능한 한 전부 정리하여 수록함과 동시에 대략 지난 십 년간 차민영의 작품을 관통해 온 몇가지 감각과 키워드를 제시하려고 한다. 작가의 언어는 글도 책도 아닌 작품이다. 이번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의 전시와 작품집은 작가의 언어를 번역하여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번역을 통한 창작적 생산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려는 시도이다.

 

[1] 매뉴얼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2008)에서 차용한 문장으로, 본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의 가상성 문화와 시공간의 변형을 해석하며 흐름의 공간과 초시간적 시간에 의해 장소를 대체시키고 시간을 소멸시키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였으나, 네트워크 사회 대신 현대 도시에 적용한다 하더라도, 현대 도시의 포스트모던 공간성-부단히 움직이고 지속적으로 모이고 재형성되는 장소들-과 이동성에 의해 공간의 장벽이 제거된 독자적 장소 감각으로서의 공간 패러다임을 시사할 수 있는 문장으로서 본 글에 사용하였다.

[2] 차민영의 ‘가방’은 ‘여행가방’과 ‘서류가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차민영은 획일화된 시스템에 대한 은유로서 서류가방을 사용하는 가 하면, 현대 사회의 비장소성에 대한 은유로서 여행가방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가방을 굳이 ‘여행가방’이라는 단어로서 언급하려는 이유는, 여행가방이 가진 디아스포라적 특성에 기인한다. ‘가방’이 뿌리내림에 반하는 의미로서 장소에서 장소로의 이동성을 일반적인 측면에서 의미한다면, ‘여행가방’은 이주, 여정, 유목을 모두 포함하여 장소에서 장소로, 사회에서 사회로, 문화에서 문화로의 이동과 회귀까지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출처 : https://planbprojectspace.wordpress.com/2017/12/27/%EB%AA%A8%EB%8D%98-%EC%94%A8%ED%8B%B0-%ED%9D%90%EB%A6%84%EB%93%A4%EC%9D%98-%EA%B3%B5%EA%B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