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Muju Film Festival
2020년 2월 이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축제들은 취소되거나, 온라인 행사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제들은 달랐습니다. 상황에 따라 온라인의 형태로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의 주요 영화제들은 모두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행사를 포기하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방식을 오가며 비교적 큰 무리 없이 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영화제개최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목소리와 부딪쳐야 했습니다. 어디는 확진자 수가 많아도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고, 어디는 확진자가 없어서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명확한 기준이나 원칙을 세우기 어려웠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상황, 영화제 주관 기관의 의지에 따라 행사의 개최 여부와 방식이 결정되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상황을 모두가 겪고 있었으므로 이런 상황이 때론 부조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했습니다.
온·오프라인 분산개최 방식으로 개최되었던 2020년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의 상황도 다른 영화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주산골영화제 역시 많은 분들의 응원과 비판을 함께 받으며 다행히도 8회 영화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이 되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확진자 수가 조금 감소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2021년은 작년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년과 같은 막연한 불안이나 불확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확진자 수가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에 영화제 개최에 대한 응원과 우려, 지지와 비판은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작년과는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영화제란 무엇일까? 관객 여러분에게, 무주에게, 일반 시민들에게 그리고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뒤따라왔습니다. 왜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올해의 영화제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좌절하고, 이해하고, 다시 고민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1년의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면 올해 영화제에 대해 고민하며 행사를 준비한 시간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고,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가 바로 저희가 찾아낸 올해의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엄중하고 불안한 이 팬데믹 시기에 2013년부터 시작된 무주산골영화제의 아홉 번째 영화 소풍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작년처럼 단기간에 많은 관객이 한꺼번에 모일 수 없으므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일일 관객 수를 제한하고 사전유료예약제를 도입하는 대신 행사 기간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를 줄이고자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한 방역을 시행하려고 합니다. 작년과 달리 온라인 프로그램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정체성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바로 ‘산골 무주’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그동안 어려운 물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편하고 쉬운 길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의미있는 길을 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과 비판 덕분에,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 여러분들 덕분에 지난 8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원하는 만큼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해보다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아슬아슬했을 때에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들과 영화인, 그리고 무주군민들의 응원과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산골 무주에, 영화가 찾아옵니다. 산과 숲과 하늘과 달과 별과 바람 그리고 영화와 관객 여러분이 어우러져 만들어낼 소란스럽지 않은 생기와 에너지가 이 어려운 시기를 사는 모두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이 어려운 시기에 무주산골영화제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일 것입니다. 6월 3일부터 시작되는 초여름의 낭만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결국, 다시, 여러분과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