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음식조리서 ‘수운잡방’ 등 전적문화재 2건도 함께 예고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고려 시대 금속공예 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을 비롯해 조선 초기 음식조리서인 ‘수운잡방’, 불경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서울 寧國寺址 出土 儀式供養具 一括)’은 조선 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된 것으로, 지정 예고 대상은 금동금강저(金銅金剛杵) 1점, 금동금강령(金銅金剛鈴) 1점, 청동현향로(靑銅懸香爐) 1점, 청동향합(靑銅香盒) 1점, 청동숟가락 3점, 청동굽다리 그릇 1점, 청동유개호(靑銅有蓋壺) 1점, 청동동이(靑銅缸) 1점 등 총 10점이다.
*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기 관료이자 유학자로, 사회정치 개혁을 주도했으나, 훈구파(勳舊派, 조선 초기 각종 정변에서 공을 세워 높은 벼슬을 해 오던 관료층)의 반발을 사 사사(賜死)되었음. 이후 선조(宣祖) 때 명예가 복권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음
* 금강저(金剛杵):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교 용구의 하나. ‘저(杵, 몽둥이)’는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무기 중 하나로, 이 무기를 불교의 법구(法具)로 차용해 사악한 무리를 막는 지물(持物) 또는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음
* 금강령(金剛鈴): 부처를 기쁘게 하고, 보살을 불러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사용하는 불교 의식구 중 하나
* 현향로(懸香爐): 불교의식을 행하는 장소에 사용하는 의례용 용구로서, 걸어둘 수 있도록 밑이 둥글고 손잡이가 달린 형태
원래 조선 시대 도봉서원 터라고 알려진 이곳은 2017년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도중 고려 초기 고승 혜거국사(慧炬國師) 홍소(弘炤, 899∼974)의 비석(碑石) 파편이 발견되었고, 비문의 내용 중 ‘도봉산 영국사’(道峯山 寧國寺)라는 명문이 판독됨에 따라 이 지역이 고려 시대 사찰 ‘영국사(寧國寺)’의 터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로써 도봉서원이 영국사 터에 건립되었다는 사실과 발굴지에서 수습된 금속공예품은 바로 영국사에서 사용한 고려 불교의식용 공예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정 예고된 10점의 역사‧예술‧학술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물 중 현향로, 향합, 숟가락, 굽다리접시 등의 명문을 통해 유물의 사용처와 사용 방식, 중량, 제작시기, 시주자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릇의 굽다리에 새겨진 ‘계림공시(雞林公施, 계림공이 시주함)’라는 명문은 1077년∼1095년 사이에 내려준 ‘계림공’의 작위명을 통해 고려 숙종(肅宗, 1054∼1105)이 시주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출토유물의 시대적 편년과 더불어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둘째, 이 유물들은 출토지가 확실하고 영국사에서 사용하였다가 일괄로 매납(埋納)한 유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기물의 용도나 의례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학술적인 의미도 매우 크다.
셋째, 완형의 세트로 발견된 불교의식구인 금동금강저와 금동금강령은 주조기술이 정교하고 세부 조형도 탁월해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 시대 금강저와 금강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공예품으로 꼽힌다. 특히 금강령의 부속품인 물고기 모양의 탁설(鐸舌)은 국내 유일한 사례이자, 금강령 몸체 상단에 새긴 오대명왕(五大明王)과 하단의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과 사천왕(四天王) 등 11존상의 배치 또한 그동안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로서 우리나라 밀교(密敎) 의식법구에 대한 연구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속에 둔 단단한 물건
* 오대명왕(五大明王): 불교의 종파인 밀교(密敎)에서 숭상하는 다섯 명왕(明王). 중앙의 부동명왕(不動明王), 동방의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남방의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서방의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북방의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을 일컬음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은 출토지가 분명하고,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된 수준 높은 금속공예기법과 더불어 공양의식에 사용했던 다양한 금속기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공예사와 불교사상 의의가 크다고 평가된다.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55)에서부터 그의 손자 김영(金坽, 1577∼1641)에 이르기까지 3대가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조리서이다. ‘수운잡방’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로, 음식 조리서가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첫 사례이다.
* 제목의 ‘수운(需雲)’은『주역(周易)』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즉 수괘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회를 베풀어 즐긴다는 의미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이 수록되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沈菜,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조과(造菓, 과자류) 및 당류(糖類, 사탕류) 5종, 찬물류 6종, 탕류 6종, 두부 1종, 타락(駝酪, 우유) 1종, 면류 2종, 채소와 과일의 파종과 저장법 7종이다. 중국이나 조선의 다른 요리서를 참조한 예도 있지만, ‘오천양법(烏川釀法, 안동 오천지방의 술 빚는 법)’ 등 조선 시대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법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수운잡방’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받드는 문화인 ‘봉제사(奉祭祀)’와 손님을 모시는 문화인 ‘접빈객(接賓客)’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자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저장법의 기원과 역사, 조선 초‧중기 음식 관련 용어 등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의가 있다. 아울러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이고 후대의 전사본(傳寫本, 베낀 글)도 알려지지 않은 유일본으로서 서지적 가치도 크다.
‘수운잡방’은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전기 요리서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있다는 점, 당시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담고 있는 고유의 독창성이 돋보인다는 점, 더 나아가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문화 기원을 찾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인정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禮念彌陀道場懺法 卷一∼五)’는 부산 고불사(古佛寺) 소장으로, 1474년(성종 5년)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발원으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개판한 왕실판본(王室版本) 불경이다. 10권 2책의 완질 중 권1∼5의 1책에 해당한다.
*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아미타부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모든 죄업을 참회하며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집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가장 오랜 판본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고려의 승려 혜랑(慧朗) 등이 간행한 책이 전하며, 이번 지정 예고된 고불사 소장본은 1474년경에 찍은 판본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은 간행 이후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태가 되는 자료로서 조선 전기 불교사상과 인쇄문화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자료이다.
고불사 소장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는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를 비롯해 공주, 숙의(淑儀), 상궁(尙宮) 등 여인들과 월산대군(月山大君)ㆍ제안대군(齊安大君) 등 왕실 인사들, 신미(信眉)ㆍ학열(學悅)ㆍ학조(學祖) 등 당대 중요 고승들이 참여한 정황이 명확하고, 판각과 인쇄에 참여한 장인들의 이름이 모두 나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적인 불경 간행사업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책 앞머리에 수록된 과거‧현재‧미래 삼세불(三世佛) 도상은 화원(畵員) 백종린(白終麟)과 이장손(李長孫)이 그린 것으로, 연대와 작가가 확실한 조선 초기 판화라는 점에서 당시 불교사, 인쇄사, 회화사 연구에도 의의가 크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 등 3건의 문화재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