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그램 개요
- 제목 : 월간 인미공 8월호-점멸하는 집
- 전시일시 : 2021년 8월 13일(금) – 8월 28일(토)
- 전시장소 : 인미공 2층
- 방문 예약 바로가기: https://me2.kr/4nizk
- 참여자 : 김두진 김문기 김미련(로컬포스트) 김원화 박민하 신미정 안형선(왕왕) 이승훈 홍혜은
- 주관 : 인미공
-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운영시간: 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월간 인미공』은 인미공의 시각예술 연구-기획-발화의 역할을 재고하는 성글고 열린 테스트 베드로, 3개월 동안 매월의 주제와 창작자들의 결과물을 연결하고 충돌시키며 문제의식을 드러냅니다. 각 작품과 온라인진(zine)은 인미공 홈페이지(www.arko.or.kr/insa/)와 인미공 2층 공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점멸
점멸(點滅)은 신호다. 신호는 어떤 상황이나 정보를 급박하게 알리기 위해 사용되며 반복해서 빛을 송출함으로써 작동된다. 그러나 그 깜빡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다면 결국 그 빛은 어둠에 가려져 점멸(漸滅)한다.
지난달 『월간 인미공』 7월호는 ‘경계’를 주제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가시화된 영역 구분으로의 경계와, 그 주변에서 생성된 경계(警戒)적 태도와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와 연결하여 『월간 인미공』 8월호 《점멸하는 집》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집’이 보내는 신호와 그 의미를 톺아본다.
집
인간 생활의 기본 3요소인 의식주 중 집(宙)은 개인은 물론 가족 공동체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집은 자본 혹은 부동산으로 번역된다. 관련 정책이 쏟아지고 그에 대한 실패와 비난이 반복되지만, 결국 이 과정은 다시 양극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영끌, 빚투, 휴거, 엘사 등 집과 연관된 신조어들은 한국 사회에서 집이 통용되는 의미를 확인하는 씁쓸한 현상이자 축이 되었다. 이렇게 집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평가하는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지역의 원주민들은 서울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수도권 밖에 놓인 집은 비어가는 불균형의 양태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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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창궐로 우리는 집에 있어야 했고, 머물러야 했다. 집은 질병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인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혹은 그렇게 명명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 머무르면서, 집은 모든 행위가 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집에서 업무를 보고, 식당에 가는 대신 집으로 배달된 음식을 먹거나 요리를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게 되고, 공간의 환기를 위한 집을 꾸며본다. 꽤 비슷비슷해 보이는 인테리어들을 열람하고 마음에 드는 가구와 소품을 고른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 취향대로 미팅 공간을 만들고 아바타를 설정하여 부스스한 얼굴을 가린 채 토론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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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은 누군가에게는 생활과 여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공간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집 안에‘만’ 있어야하기에 아이와 노약자의 돌봄 노동 시간이 하릴없이 늘어났고 그 노동의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또한 장애인에게 집은 제한된 이동 범위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학부모들의 불편이 증가하고 교육 시스템의 변화에 적응해야 될 뿐 아니라 ‘격차’라는 문제가 생겼다. 대면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대도시와 읍면 지역 간 기초학력 미달 비율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고 취약계층 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진과 성적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원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과 제한과 한계로서의 집의 공간이 공존한다. 자본과 재산, 안식과 보호가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집, 혹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집.
가족
지난 4월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은 1인 가족, 비혼가정, 위탁가정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위해 가족의 법적 의미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존 부계 중심의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시도이다. 변화에 발맞추겠다는 의지처럼 보이지만, 실상 팬데믹 이후 정상 가족의 형태가 여실 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더 이상 특정 가족의 형태를 사회적 이상으로 설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부모 가정, 성소수자, 비혼, 동거 등 다양한 공동체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시인하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여전히 편견의 시선을 피해 몸을 뉘일 집을 찾아 나선다.
다시, 시그널
집이 보내는 신호는 작지도, 가볍지도 않다. 집, 가족 공동체, 이동의 의미의 변화와 그 위기에 대한 점멸의 신호가 이어진다. 내 집을 찾아 삶의 서사를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은 이제 경계의 밖에서 벌어지는 모르는 사람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상이 되었다. 이주와 정주가 고착화될 수 없는 오늘, 집은 어디에나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출처 : https://www.arko.or.kr/insa/board/view/611?bid=430&cid=710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