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과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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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개요 : 2016년 10월 6일 ~ 2016년 12월 4일

전시장소 : 수원화성박물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21, 수원화성박물관

1. 정조대왕의 탄생과 즉위

1752년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사이에서 탄생한 정조대왕은 8세때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1세때 김시묵金時默의 딸(효의왕후)과 가례를 올리는 등 왕위 계승자로 서의 준비를 탄탄히 하였다. 마침내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제22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탄생에서부터 성장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후기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정조대왕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탄생과 성장
2) 왕세손 학습과 즉위

2. 현륭원 조성과 수원유수부 설치

정조대왕은 1776년 즉위와 동시에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만천하에 표방하며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각종 추숭사업을 진행하였다. 사도세자에게 ‘장헌’이라는 시호 추상, 궁원宮園의 정비 등 사도세자에 대 한 왕세자로서의 지위 회복 사업은 재위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사도세자의 무덤 을 수원으로 옮기고 현륭원을 조성함과 동시에 원찰인 용주사도 창건하였다. 이 와 더불어 수원부 읍치를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며 새로운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였다. 또한 수원을 유수부로 승격시켜 그 위상을 높인 후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주둔시켰다.
1) 존호 추상과 궁원 정비
2) 현륭원 조성과 용주사 창건
3) 수원부 읍치 이번과 유수부 설치

3. 정조대왕의 대업, 수원화성

1794년 1월부터 수원화성 축성을 시작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는데, 당초 10년 계획이었으나 2년 9개 월만에 완공하였다. 정조대왕은 우의정 채제공을 축성 총책임자인 총리대신으로 삼고, 당시 수원유수 인 조심태를 현장 총감독에 임명하였다. 또한 수원 출신의 대표적 무관인 이유경과 김후 등을 현장 감독관으로 임명해 수원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수원화성 축성의 전 과정과 동원된 인력 및 물력의 내용은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의궤』로 간행되어, 정조대왕을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관리 그리고 돌을 나르던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합심하여 수원화성을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1) 정조대왕과 축성 공신
2) 축성 과정과 주요 시설물
3)『화성성역의궤』

 

정조대왕 正祖大王 (1752~1800)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차남으로 1752년 창경궁 경춘전에서 탄생하여 그해에 원손으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성祘이고 자는 형운亨運이며 호는 홍재弘齋 또는 만천 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학문에 뛰어나고 시문도 능하여 184권 100책에 이르 는 방대한 양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남겼다.
여러 번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1776년 왕위에 오른 후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 해 대통합을 이루려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무덤을 외호外護하기 위해 신도시 수원을 건설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 수원화성 축성이라는 대업을 완성하였다. 1800년 6월 49세의 나이로 창 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였으며 유언대로 사도세자의 무덤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 다. 1899년 황제로 추존되었다.

 

원출처 : http://hsmuseum.suwon.go.kr/html/02exhibit_02_view.jsp?exhibit_division=00150001&div=2&seq=136&page=1&block=1&search_key=&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