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묘지사지에서 고려 강도시기 대형 온돌 건물지 확인
상단 평탄지 조사에서 확인… 온돌 구조의 변천사 이해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 기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고려 강도시기의 사찰유적인 강화 묘지사지(妙智寺址)에서 대형 온돌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 강도시기(江都時期): 몽골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시기
* 온돌: 방 아래에 화기가 지나는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불을 지펴 돌을 덥히는 전통적 난방 방식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묘지사는 1264년(고려 원종 5년) 왕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초제(醮祭)를 지내기 전에 거처했던 사찰로, 마니산 동쪽의 초피봉 남사면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지사지는 산 사면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2개의 평탄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상단 평탄지에 대한 조사에서 해당 온돌 건물지를 처음 확인하였다.
* 초제(醮祭): 무속신앙이나 도교에서 별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
건물지는 동서 너비 16.5m, 남북 길이 6.3m의 5칸×2칸 규모로, 남편 기단 양쪽 측면부가 앞으로 돌출된 구조이다. 온돌은 동편 일부를 제외한 방 전체에 시설되었는데, 방 양쪽에 온돌이 각각 분리되어 설치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 온돌의 아궁이는 건물지의 동쪽 칸 및 서쪽 돌출부에 조성되어 있다. 아궁이를 통해 유입된 화기가 각각 3줄 및 2줄의 고래를 통해 방 전체를 ‘ㄷ’ 형태로 회전하면서 방을 덥힌 다음 북편 기단 외곽의 배연구로 빠져나가는 구조이다. 특히 온돌방에 설치된 고래와 고래둑은 너비 40~60㎝, 고래둑 위에 얹어진 구들장은 길이 70~120㎝로 지금까지 확인된 다른 온돌 시설물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다.
* 배연구: 연기가 배출되는 구멍
* 고래둑: 열기가 통과하는 통로로, 구들장을 고이는 받침
* 구들장: 고래 위에 깔아 방바닥을 만드는 얇고 넓은 돌
방 전체에 온돌을 시설한 전면온돌은 대체로 고려 후기부터 등장하여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나, 이 시기의 구조가 명확한 대형 온돌 건물지는 확인되는 사례가 드물다. 이번에 조사된 온돌 건물지는 13세기대 전면온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온돌 구조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023년까지 계속되는 강화 묘지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강도시기 사찰의 구조와 성격을 파악하는 한편 고려시대 건축 등 문화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