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혜정 개인전 : 의문의 단서

You are currently viewing 금혜정 개인전 : 의문의 단서
  • Post category:전시

전시기간 : 2016년 11월 19일 ~ 2016년 11월 30일

전시장소 : 스페이스22,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빌딩 22

낯설지 않은 낯섦의 미학
예측의 기능은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눈도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사물이 놓여 있기를 예측하고 기대한다. 이 기대가 어긋날 때 시각은 상황을 새롭게 지각하기 시작한다. 금혜정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속 이미지는 이러한 전복(顚覆)의 상황을 연출한다. 얼핏 보면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어긋난다는 낌새를 채고는 작품을 낯설게 느끼기 시작한다.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이 한 공간에 자리 잡으면서 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이 생겨나고, 이 공간의 모호성은 관객에게 호기심과 신비감을 유발한다.
현실적 가상은 현실에는 없지만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가상이다. 그런 점에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 다르다. 작가는 숲과 바다 등 실제 현실의 공간에 공(球)과 깃발 등의 오브제를 안착시켜 미적으로 새로운 현실 공간을 창출한다. 작가에게 친밀한 연상적 사유를 통해 현실의 공간에 새로운 오브제가 들어서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새로운 이미지가 추가되면서 개별 이미지들 사이에 전체적으로 새로운 결합체와 의미체가 형성된다. 형(形)과 색(色)으로 구성된 개별 이미지들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서로 끄는 힘(引力)과 미는 힘(斥力)이 작용한다. 인력과 척력 사이의 긴장관계는 금혜정의 현실적 가상에서도 나타나 관객이 의아해 하며 몽상에 빠지게 한다.
본래의 배경에 추가적으로 배치된 오브제는 공 모양의 크고 작은 풍선 혹은 물체가 주를 이루지만 깃발, 얼룩말, 회전목마, 자동차, 일기장 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색깔의 공들이 바다와 숲 등을 배경으로 유희한다. 밝은 푸른빛 바다 위의 주홍빛 풍선과 유채꽃이 만발한 초원의 노란빛 풍선은 발랄하고 희망적이지만 어두운 숲속의 흰 공과 숲 옆 초원의 검은 공 그리고 어둠이 깔린 개양귀비 꽃 들판에 떠 있는 빨간 공들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래사장에 연분홍빛 삼각 깃발이 나부끼고 그 건너로 흐릿하게 교각과 도시 그리고 공룡 같은 형체가 보이는가 하면,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얼룩말이 유유히 노닐고, 들판에서 낡은 회전목마가 돌고 있으며, 검푸르고 음산한 해안가에서 마치 유령들의 회의장소 같은 건물이 불을 밝히고 있는가 하면, 모래사장에 자줏빛 고급 자동차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박혀 있다. 그리고 나무 뒤에서 방금이라도 요정이 튀어나올 것 같이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폐허로 방치된 수영장에서는 흰나비들이 노닌다.
이번 전시 <의문의 단서>는 이러한 ‘낯설지 않은 낯섦’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메시지를 관객이 스스로 찾게 만든다. 모호한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상상과 상념의 실마리 혹은 기폭제 역할을 할 따름이다. 상호 교차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동질성과 이질성을 찾아 그것을 기점으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차(茶)와 마들렌이 만나 프루스트로 하여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득히 먼 어린 시절을 돌이키게 하듯이, 금혜정의 작품 속 이미지들도 서로 만나 새로운 상념의 지평을 연다. 실제 장면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색하고 낯설지만 상상과 연상에서는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작가는 주도면밀하게 선별하여 배치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낯설지 않은 가상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한다. 여기서 관객은 작품에 참여하고 작품과 소통한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미지들의 외적인 특성이 신비감을 낳는 것에 못지않게 작품들이 내적으로 자아내는 우아한 품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형태와 색채의 적절한 배치와 조화 그리고 조형상의 안정된 구조 등은 고전주의적인 심미감을 낳는다. 쉴러가 우미(優美: Anmut)라고 칭한 여성성의 향기가 작품에 녹아들어 정갈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쉴러에 따르면 우미는 “인간의 자의적인 운동의 소산으로서 자연이 정신의 명령을 따르면서도 마치 자연이 기꺼이 그렇게 움직인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이다. 금혜정 사진의 전체 이미지들은 자의적인 행위로 출현했으면서도 자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추가된 오브제는 다양하지만 이들 간에 어느 정도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오브제로서 공(球)이 사용되어 원형(圓形)의 이미지가 직접 확인되기도 하지만,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불빛, 회전목마 등에서처럼 간접적으로 원형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금혜정의 첫 번째 개인전 <빛의 밀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사진에서 빛의 효과와 의미를 적절히 활용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도 둥근 물체와 빛의 연관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빛과 원(圓)의 관계에 대한 탐색은 금혜정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지금까지 그의 작업을 이끌고 있는 두 축이라는 생각이다. 심리적인 연상작용에 준거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양립 불가능한 요소들이 빛과 원을 매개로 상호 소통하게 하는 시도는 참신하고 고무적이다. 유헌식(문예비평가, 단국대 철학과 교수)
원출처 : http://www.artbava.com/exhibit/detail/4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