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명동 그리고 이 도시 저 도시의 무수한 골목길 – 고작 카메라 한대 둘러매고 도시를 배회하던 사냥꾼은 어둠이 내리는 어스름 녘이면 지친 몸을 이끌고 밝은 동네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서서 먹는 대포 집에서 국수 한 그릇,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의 피곤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일깨운다. 오직 가난한 가슴으로 만나야 했던 그 시절, 그 도시 _ 하얗게 오버랩 되는 아련한 불빛, 그 소리, 그 냄새들에서 스쳐 지나간 그곳, 그대들의 향취. 집으로 가는 길, 싸늘한 도시 한 켠에 따스하게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들이 내가 살던 달동네에도, 단칸방에도 빛나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1985부터 1990년 까지 약 5년 정도 촬영된 것이다.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 사진집을 보고 내가 받은 감동 때문이었다. 1958년에 출판된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개인적, 보편적 진실의 힘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또렷해졌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해야 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이 시대에 살고, 보고, 느낀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느끼는 객관적 시각이 아닌 나라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 시대의 현상들, 정치, 경제, 문화, 내가 살아가는 주변의 현실들을 보도하거나 증언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러나 내 작업 또한 <미국인들>이 그러했듯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한 시대의 보편적 진실이 ‘나’라는 매체를 통과하며 사진 속에 담길 것이라 확신했다.
젊은 날 고향을 떠나 서울과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느끼게 된 전반적 생각은 나와 그리고 처지가 비슷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현실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땅이 아니라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남들 같은 ‘타인의 땅’ 임을 느꼈다. 2013년, 우리는 지금 누구의 땅에 있는가?
그 때에 써두었던 작가노트 중 일부를 발췌하였다.
타인의 땅, 우리들의 땅
할수록 어려운 것이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조금 안다고 느끼게 되면서 더욱 막막하고, 더욱 괴로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현실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무엇이며, ‘시대의 현실’ 이란 무엇일까? 이 두 가지의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어떻게 아픔 없이 해명하며, 극복할 수 있을까? 철학은 긴 사설만 늘어놓고, 예술은 시끄럽게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나에겐 꿈속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문 밖의 소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타인의 땅’ 에서 뜻을 잃고 오고가는 나그네들이 아닐까요? 정말 나의 가슴을 두드리고, 나의 피부를 쓰라리도록 하는 사진은 무엇인지? 이 번민이 계속되는 한 나의 사진은 방황을 멈추는 날까지 계속되는 숙명이겠지요.
원출처 : http://gallery-now.com/new_html/02_current_tap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