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중기 공포양식의 문수사 주불전·계곡 위에 세운 대형 누각으로 각각 높은 가치 인정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고창 문수사 대웅전(高敞 文殊寺 大雄殿)」과 「의성 고운사 가운루(義城 孤雲寺 駕雲樓)」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고창 문수사 대웅전」은 전라도 지역 대표 문수도량인 문수사(文殊寺)의 주불전(主佛殿)으로, 보물로 지정된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이다.
「의성 고운사 가운루」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진입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곡 위를 가로질러 건립된 사찰 누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고창 문수사는 644년(백제 의자왕 4)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다. 「문수사 창건기(文殊寺 創建記, 1758년)」에 따르면 임진왜란(壬辰倭亂) 후 1607년(선조 40)에 중창(重創)되었고, 1653년(효종 4) 회적(晦跡) 성오화상(性悟和尙)에 의해 또다시 고쳐지어졌으며, 그 다음해 1654년 제자인 상유(尙裕)가 삼불좌상과 시왕상 등을 조성한 기록으로 볼 때 「문수사 대웅전」 또한 이 시기에 중창(重創)된 것으로 추정된다.
*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새롭게 지음.
* 2016년 보물로 지정된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내 후령통에서 2004년 발견된 「시왕조성발원기」를 통해 1654년(효종 5)에 조성된 기록이 발견돼, 창건기 기록과 대웅전 중창을 뒷받침함.
* 회적(晦跡) 성오화상(性悟和尙):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승군으로 활약하며 1624년(인조 2) 팔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전쟁으로 소실된 전국의 사찰을 중건했던 승려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제자로, 현재 성오화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됨.
「고창 문수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형식으로 공포의 형태와 짜임에서는 단순하면서도 강직한 조선 전기∼중기에 이르는 양식과 전라도의 지역적 특색이 나타난다. 지붕은 팔작지붕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후대에 맞배지붕으로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현재는 다포계 맞배지붕의 기법과 양식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또한, 대웅전의 단청은 전통무기안료와 아교가 사용된 옛 기법이 남아 있어,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 다포: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은 건축양식
* 공포: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팔작지붕 : 맞배지붕 옆에 삼각형의 합각을 남기고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
* 맞배지붕: 지붕면의 앞뒤로만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으로, 옆에는 판재를 이어 붙여서 비바람을 막음.
한편, 의성 고운사는 의상대사에 의해 신라시대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며, 「의성 고운사 가운루」는 「고운사사적비(孤雲寺事蹟碑, 1729년)」, 「고운사사적비(孤雲寺事蹟碑, 1918년)」 등의 문헌사료를 통해 1668년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성 고운사 가운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 형식을 갖춘 사찰 누각으로 조선 중·후기의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특히, 계곡의 양쪽 기슭(양안)을 가로질러 배치되어 있으며, 3쌍의 긴 기둥이 계곡 바닥에서 누각을 떠받치고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주칸)을 넓게 배치한 점 등이 기존의 사찰누각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로 자연과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이번에 지정한 「고창 문수사 대웅전」과 「의성 고운사 가운루」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