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역사학회 성명서] 힐튼호텔의 역사성 보전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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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의 역사성 보전을 촉구한다

남산 힐튼호텔(1977-83년)은 우리 현대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건축유산이다. 해외 주도 하에 진행된 당대의 대형 건축사업과 달리, 힐튼호텔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우리의 독자적 역량을 통해 미적, 기술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을 성취한 예로,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반데어로에가 확립한 건축언어를 그의 수제자인 건축가 김종성이 우리의 도시환경과 자연에 어우러지게 구현한 점도 높게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개발시대의 기념비로 정치, 경제, 문화사에 걸쳐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무대로 존재해왔다.

2021년 힐튼호텔이 부동산자산운용사에 매각되어 복합개발을 위해 전면 철거될 계획이 알려지면서, 우리 건축계와 문화계는 이에 대한 공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왔다. 수차례의 심포지엄, 좌담회, 설계경기 및 출간을 통해 건축유산에 대해 사회적 접근부터 힐튼호텔의 기억을 이어갈 수 있는 구체적 계획안까지 다양한 의견의 개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은 2023년 말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변경안의 수립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가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는 “힐튼호텔이 가지고 있는 건축사적인 가치를 고려하여 호텔의 메인 로비를 원형 보존하고 새롭게 활용”한다고 발표하였으며, 이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전면 철거로부터는 진일보한 해법이었다. 그러나 2024년 말 서울시의 사업시행 계획인가를 받은 설계안은 지금까지의 논의가 무색하게 로비를 지하화하여 공간적 속성을 크게 훼손해 “원형 보존”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 환경의 토대 위에서 도시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가운데, 세계 도시들은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통해 저마다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다. 보전의 목적은 건축이 시간의 흐름을 통해 축적한 장소성과 시민들의 기억을 이어감으로써, 여러 시대의 자취가 누적되는 고유한 정주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물 부분의 단순한 물리적 존치나 재구성이 아니라, 관련 요소의 시간적, 공간적 맥락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의 로비 지하화 계획은 명목상 보전의 겉모습만 취하고 있을 뿐 깊이 있는 접근이라 볼 수 없으며,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못했다.

서울시가 힐튼호텔뿐 아니라 세운상가, 창신동, 풍납토성, 남산 일대에서 최근 취해오고 있는 개발 중심의 방향성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법적 보호의 테두리는 항상 제한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으며, 그 외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산을 지켜내는 것이 한 시대와 사회의 문화적, 행정적 역량이다. 유산의 철거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결정이기에, 역사는 무엇을 지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없앴는지를 통해 우리 시대를 평가할 것이다. 서울이 거대 규모에 걸맞는 문화와 역사의 도시로서 성장하고자 한다면, 당면한 역사성 보전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고 진정성 있게 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5년 1월 23일

(사)한국건축역사학회

원출처 : https://www.kaah.or.kr/html/sub06_1.jsp?ncode=a001&num=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