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

You are currently viewing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
  • Post category:전시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
2017-04-14-2017-05-02
엄상빈

■ 전시 기획 의도
사진가 엄상빈은 <아바이마을 사람들>, <학교 이야기>, <생명의 소리> 등의 전시와 사진집으로 우리에게 분단 작업, 학교 현장 사진, 환경사진 등으로 익숙한 작가이다. 2008년 <들풀 같은 사람들>에 이어 2015년 <창신동 이야기>를 통해서 민중들의 삶을 사진과 구술로 엮어 내는 작가로도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중 근간에 해당되는 분단 작업의 연장선이다. 아바이마을 30년 작업처럼 긴 호흡으로 지켜본 철조망 등 군 시설물과 지역민들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군사정권, 문민정부 등 정권의 흐름과 통치이념이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있어 마치 남북관계에 따른 철조망 변모의 연대기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직접 인화한 흑백사진 35점과 최근에 찍은 컬러사진 십여 장을 함께 전시한다.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은염 흑백사진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되리라 기대한다.
■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 작품해설
불미스러운 풍경
– 엄상빈의 동해안 사진                                                                               (정진국 / 미술평론가)
(前略) 이번 전시회에 나온 동해안 물가와 길가와 주변 사진은 휴전선 북방한계선부터 고성과 속초, 양양과 강릉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변 풍경이다. 작가가 30여 년 촬영한 흑백사진이다. 최근에 디지털 컬러사진도 몇 점 추가되었다.
이미 여러 권의 사진집에서 작가의 시선과 역량을 접했다시피, 엄상빈은 오다가다 해변을 훔쳐본 사진가는 아니다. 그 바닷가 토박이로서, 교사로서, 환경운동가로서 그 물가에서 오래 살았다. 작가는 2006년에 발표했던 사진집 「생명의 소리」에서도 같은 지역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진의 일부도 포함되었지만, 태풍과 화마가 쓸고 간  현장이다. 그렇게 사태가 지나간 자리를 꾸밈없는 눈으로 바라본 유례없는 작업이다. 그는 잿더미가 된 골짜기와 가시밭길이 된 모래밭을 누볐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사진 속에 철조망이 파도만큼 넘실댄다. 태백산맥 높은 계곡의 격랑과 개울을 타고 내려온 자갈과 잡석도 보인다. 조개류와 해조류의 찌꺼기도 여지저기 나뒹군다. 다른 연안처럼 펄이 없어 맑고 고운 비단조개가 사는 사구 너머 펼쳐지는 물빛이 유난히 눈부시다. 가끔 등장하는 해풍에 비틀린 송림도 구름그림자가 스치는 물웅덩이도 아름답다. 팔레스타인 못지않게 갈등과 폭력으로 맞서고, 전운이 감도는 우중충한 곳이라 믿고 싶지 않은 곳이다. 과거에 작가가 동료들과 함께 통일전망대에 올랐을 때, ‘통일절망대’라고 탄식하며 바라보던 풍경이다. 암초와 초소와 콘크리트 가설물은 중요한 무대장치다. (中略)
엄상빈은 70년 넘도록 동포끼리 민망한 상호비방과 적개심만 부추기며 대치해온 해변을 보여준다. 그렇게 걷어치우지 못한 철조망 곁에서 자연과 환경이 어떤 꼴인지 그 살풍경의 의미를 묻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어쩌다 우리는 넓고 푸른 바다를 가로막지 않고 살 수 없게 되었을까? ‘눈 가리고 아웅’ 한다든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터무니없는 짓 아닐까. 철망으로 청천벽해를 가리겠다고! 철조망에 가려진 그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60년 동안 미움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부풀리고 키우기만 했다.
꽂힌 화살과 창을 뽑지도 않고 어떻게 상처가 아물기를 바랄까? 고운 모래밭에 쇠말뚝을 박아두고 어떻게 금수강산을 노래할까?
비록 정치적으로 우울한 방책이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씁쓸했을까? 철망에 오징어와 미역, 가자미와 해초를 널어 말리는 어민들마저 볼 수 없었다면!
동해안에서 작가가 거둬들인 이런 ‘불미스러운 풍경’이야말로 사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아닐까? 사진으로 가장 볼만한 풍경이고. 사진의 역설을 누누이 들려주는 풍경이 아닐까.
동해안 사진 속의 풍경은 충견처럼 미련하게 계속 버티는 풍경이다. 달라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달라져야 하고 한시 빨리 사라져야 하는 데도 끄덕도 하지 않아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다. ‘사라져가기 때문에’ 서둘러 사진으로 찍어두어야 한다고 열광하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풍경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데 ‘사라질 줄 모르니’ 그 뻔뻔함을 오래 지켜본 사람의 기록이다. 언제까지 갈지 보겠다고! 이상한 정념으로 기억해둔 이미지들이다. 희망이 물거품이 될까봐 초조해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사진이다. 그 바닷가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했을 사진이다. (下略)
■ 작가 노트
철조망 애환
바닷가에 끊임없이 이어진 철조망은 그냥 철조망이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담론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 바닷가에 처음 등장한 군 경계 시설물은 ‘흔적선 끌기’였다. 모래밭을 써레질하듯 평평하게 밀어 놓음으로써 밤사이 침입자의 발자국 등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섬뜩한 불빛이 수 킬로미터나 나가는 ‘서치라이트’라 부르던 탐조등도 등장했다. 그 다음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케 하는 ‘목책’이 생겨났고,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의 ‘철조망’이 등장했다.
철조망은 한 때 녹슬고 삭아서 기둥만 남을 정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에 따라 더욱 튼튼한 모습으로 규모와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철조망의 변모는 당시의 통치이념이나 남북 관계의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 했다. 철조망에 내걸린 문구도 ‘접근하면 발포함’, ‘접근금지’와 같이 군사정권다운 위협적이고 일방적인 명령어였다. 오후 6시만 지나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제구역으로 바뀐 채 밤을 맞았다.
그런가하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성화 봉송 때는 ‘자연보호 The Preservation of Nature’ 라는 거짓문구를 붙이는가하면, 7번국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경계초소를 감추느라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다 가려놓기까지 했다. 이는 성화 봉송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지나가는 한순간을 위해 베어진 소나무는 동해안만 해도 수만, 수십만 그루였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철조망을 두고 벌어지기도 했다.
7번국도변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보아온 낯익은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넝쿨을 키우고 때로는 빨래나 오징어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 이 구조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반공과 안보를 내세우는 허울 좋은 상징물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군사작전지역이므로…’ 하는 식으로 경고 문구도 순화되고, 지역 주민들의 경제와 맞물린 요구가 거세지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철조망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철조망이나 초소가 생활 주변에 늘 가까이 있는 관계로 일상을 담듯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찍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때로는 눈치를 보며 찍어야 했고 발각되기라도 하면 곤혹을 치러야 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그래도 훗날 철조망이 걷히고 나면 ‘분단의 고통을 겪던 1980, 90년대 우리의 조국 풍경이 이러했노라’고 사진으로 말할 날을 기대하며 이어온 철조망 사진작업이 어느덧 30년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철조망 조국 그대로다. 물론 해수욕장으로 개방되거나 상업시설이 들어선 곳 일부는 철조망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변함없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간 교직에 있을 때 찍었던 교련, 체벌 등도 20여년이 지나면서 역사가 되었다. 고성산불, 태풍 ‘루사’ 때의 재해 장면들, 2차선 7번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직선화할 때의 장면들도 사진으로 과거를 말할 뿐이다. 아바이마을 30년 사진작업 역시 세대교체와 더불어 초창기 흔적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하다보니 그간의 작업들은 2, 3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옛 기록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의 남북 관계만큼이나 철조망 모습은 이 작업을 시작하던 1980, 90년대와 변함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 중·고등학생들 수학여행 일정 중의 하나였던 동부전선 ‘통일전망대’를 일컬어 ‘통일절망대’라 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울러 지난여름 수많은 피서객들이 마주했을 철조망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로 비쳐졌을지 의문이 앞선다. (엄 상 빈)
■ 작가 약력
엄상빈(嚴湘彬)은 1954년생으로 강원대 사대에서 수학을,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80년부터 20년간 속초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퇴직 후에는 상명대학교 등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민예총 강원지회장,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운영위원,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개발지구」(1987), 「Mt. Mckinley」(1988), 「신평리 풍경」(1995), 「고성 오늘 전」(1995), 「청호동 가는 길」(1997), 「고성산불」(1998), 「환경사진초대전」(2001), 「생명의 소리」(2006), 「학교 이야기」(2006), 「들풀 같은 사람들」(2008), 「창신동 이야기」(2015), 「강원도의 힘」(2015),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2017) 등의 개인전과 광화문 갤러리 개관 기념초대전 「서울의 화두는 평양」(2000), 「한국다큐멘터리사진 33인전」(2004),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기획초대전 「어제와 오늘3」(2008), 「베이징국제사진주간2015」(2015), 「제3회 수원국제사진축제」(2016) 등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사진집으로는 『Mt. Mckinley』(대성, 1988),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팡』(광명, 1993), 『청호동 가는 길』(일, 1998), 『생명의 소리』(눈빛, 2006), 『학교 이야기』(눈빛, 2006), 『들풀 같은 사람들』(눈빛, 2008), 『평창 두메산골 50년』(공저)(눈빛, 2011), 『아바이마을 사람들』(눈빛, 2012), 『창신동 이야기』(눈빛, 2015), 『강원도의 힘』(눈빛, 2015),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눈빛, 2017) 등이 있으며, 동강사진박물관, 속초시립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원출처 : http://www.space2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