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사진전 ‘좌천아파트 – 기억의 정원’ 2017. 5. 19 ~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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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사진전
모던시티 – 좌천아파트
2017. 5. 19 ~ 6. 4
사진공간 배다리 (2관 차이나타운전시장)

주소 :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51번길 19-1
휴관 : 목요일

전시 오픈 및 작가와의 대화
2017. 5. 19(금) 오후 6:30

좌천아파트 – 기억의 정원
이동근

산복도로. 도로라고 하는 것이 본디 사람과 차의 왕래를 위해 땅위에 만들어진 길을 뜻하기에, 산복도로란 산 위에 만들어진 길 외에 따른 뜻은 없다. 하지만 부산 사람에게 산복도로란 사전적인 뜻보다는 훨씬 다른 정서적 기억을 포함한다. 혈관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마다 어려웠던 시절 부모 형제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묻어있기에, 산복도로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부산사람의 삶의 애환과 애증이 몸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향의 원형 같은 곳이다. 부산의 산기슭에 삶의 터전을 만든 서민들에게 산복도로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그 산복도로 한켠에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중 하나인 좌천아파트가 있다. 성북고개 인근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합리적 효율성을 강조하던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파트로 처음 지어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파트라고는 하나 지금의 고층 아파트와는 사뭇 다르다. 복도 양쪽으로 약 열 평 정도 크기의 집들이 도열하듯이 마주보고 두 군데의 출입구를 통해 계단을 올라가면 복도 중간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40여 년 전 입주 당시에는 전기와 수도도 없이 시멘트 골조만 있는 상태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고 연탄을 피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좌천아파트는 그 곳 주민들의 일상과 경험이 투영된 공간으로써 삶의 양태를 드러낸다.

산복도로 다시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좌천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과 사진 강좌를 하고,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시선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전시까지 하는 프로그램이다.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의미를 찾는 것이 목적이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 어두컴컴한 복도, 계단 입구에 누군가가 갖다놓은 낡은 나무의자, 아파트 옹벽사이에 걸린 빨래. 다시 찾은 좌천아파트는 놀랍게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30여년 전 인근의 학교를 다니면서 익숙하게 봤었던 모습들이다.
공간이 더디게 변하다 보니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삶의 도구도 과거의 시간을 품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생경한 모습이다. 경험하지 못해 낯선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낯섬이다. 불시에 다가온 낯섬은 곧 기원에 대한 기억의 회로를 작동시킨다. 검붉은 고무 물통, 파란 슬리퍼, 창문 틈의 장독, 나무선반에 올려진 양은냄비.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며 도구들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전해준다. 사진이 공간과 시간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며 도구들은 경험과 기억의 집합체이다. 사람의 기억은 홀로서는 완벽하지 않다. 선명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탈색되어 종국에는 잊혀지기도 하지만, 경험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물의 도움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물의 기억은 나의 기억과 동등하다. 사진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듯이 내가 바라보는 좌천아파트의 부엌과 방, 그리고 복도는 나의 또 다른 기억을 촉발시킨다.
그곳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또 렌즈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진으로 담았다.
공간과 사물의 단순한 외형보다는 일상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기억들을 담으려하였다.
촬영하는 순간,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나의 유년 시절로 돌아갔다.
원출처 : http://uram54.com/upcoming/93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