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화중성에서 방어시설인 목책 치(雉)와 외황(外隍)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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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에서 발견, 별도 방어시설 발견은 처음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에서 조사 중인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에 대한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조사에서 고려 시대 강화중성(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의 목책 치(雉)와 외황(外隍)을 처음 확인했다.
* 치(雉):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방어시설
* 외황(外隍): 성벽 밖에 둘러 판 물 없는 도랑

고려 조정은 1232년(고종 19년)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이후 강화는 1270년(원종 11년)까지 39년간 개경을 대신하여 고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대몽항쟁 당시 강화도성은 내성을 비롯하여 외성, 중성 등이 차례로 축조되어 모두 세 겹의 성벽이 겹겹이 둘러싼 요새를 구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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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왕궁추정지에서 대규모 토성과 목책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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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는 지난 달부터 경남 함안군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펼쳐 ▲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木柵, 울타리) 시설, ▲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의 각종 토기 조각들을 찾아내면서 그동안 문헌이나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그동안 함안군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邑誌)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또한, 이곳은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도 아직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됐지만 최근까지 실질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체를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왕성과 관련된 시설을 확인하면서 전성기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의 실체에 다가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 읍지(邑誌): 한 고을의 연혁과 지리‧인물‧생활‧문화‧풍물 등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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