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조사 결과, 제련로(제철 가마) 14기 추가 확인 / 현장 설명회 5.30. 오후 2시 –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노명구)는 ‘중원(中原) 지역 제철기술 복원연구 사업’으로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조사한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에서 제련로 14기를 새롭게 확인하였다.
* 제련로(製鍊爐):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노, 爐)
* 발굴현장: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392-5번지 일대
이번 3차 조사에서는 조사 지형과 유구의 여러 양상을 바탕으로 제련로의 축조과정과 순서를 파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사 구역의 기본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 서고동저(西高東低)이며 제철유적은 상대적으로 지형이 낮은 남쪽과 동쪽에서 먼저 축조가 시작되었다(하층). 중층은 오랜 기간 조업을 위해 제련로가 수명이 다되면 폐기 후 폐기물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제련로를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지형이 높은 북쪽과 서쪽에서 가장 늦은 시기의 제련로(상층)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또한, 북쪽과 서쪽의 상층 지형에서는 유구가 복잡하게 중복된 양상도 다수 확인하였다. 이는 각 유구들이 지하시설을 공유하고, 단단하게 형성된 지반을 재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백제의 제철기술사를 복원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기대된다. 지하시설에서 나온 목탄의 방사성
탄소연대측정(AMS) 결과, 약 100여 년간의 장기 조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한 장소에서 장기간 조업으로 철
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변에 다수의 철광산지가 있고, 수로를 이용해 연료(목탄)를 쉽게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강
수운(水運)을 통한 유통망이 발달한 충주만의 탁월한 지하자원과 입지 조건 덕분으로 충주가 고대 백제뿐만 아니라 고려‧조선
시대까지도 국내 제철생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 AMS 이용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질량가속기를 이용하여 극소량의 시료에서 정밀한 연대정보를 산출하는 방법
이번 발굴성과는 오는 30일 오후 2시 충주 칠금동 발굴현장에서 일반에 공개하며, 자세한 사항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043-850-7813)로 문의하면 된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국내 3대 철 생산지(충주, 울산, 양양)이자 다수의 제철유적이 남아 있는 충주 등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제철기술을 복원하기 위한 중장기 학술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의 남사면 구릉지를 대상(약 1,000㎡)으로 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으며, 현재까지 총 25기의 제련로를 발견하면서 충주 칠금동 유적이 명실상부 국내에서 단위면적당 최대 철 생산유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무엇보다도 ‘칠금동식 제련로’의 가장 큰 특징인 ‘지하시설’의 존재를 밝히는 성과를 거뒀다.
지하시설은 제련로를 축조하기 이전에 먼저 넓게 땅을 파고 그 바닥에 긴 목탄들을 가로와 세로로 교차 배치하여 치밀하게 채우고 벽면에 목탄을 기대거나 박은 시설이다. 지하시설을 만든 후에는 흙을 다져 채우고 가운데를 다시 파서 제련로의 본체를 축조하는데, 미리 지하시설을 만들면서 땅을 메우고 되파는 행위를 통해 노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땅을 다지는 효과와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는 일종의 방습효과를 높인 사실을 알 수 있어 조상들의 과학적이고 치밀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철광석이 녹아 철과 슬래그 등의 불순물이 분리되면 철은 노(爐) 내에 뭉쳐지고, 슬래그는 노 밖으로 배출되는데 이때
슬래그(Slag, 철 찌꺼기)가 배재부로 쉽게 배출 시키고자 배출 부위를 점토다짐으로 경사로를 만들고(16호로), 경사로 하단에
작은 구덩이를 만든 사례(17호로)도 최초로 확인하였다.
* 배재부(排滓部): 조업 중에 노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슬래그 등의 불순물을 받아내는 구덩이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인 제철관련 학술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발굴조사 뿐만 아니라 제철기술 복원실험, 자연과학적 분석과 민속조사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복합 조사연구를 통해 고대 제철기술을 복원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