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 4월 15일
부재의 풍경
지방 군 단위의 지역에 중심부를 제외하고 시골엔 사람이 없다. 풍경(배경)은 10년 전이나 20여 년 전이나 그대로인데 그 풍경 속에 사람만 부재한 것 같다. 시골의 드넓은 풍경은 사람을 더욱 왜소하게 만든다. 작업실 앞의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사람을 찾아 나선다. 온종일 기다려도 지나가는 사람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9년에 도시를 뒤로하고 시골로 이주하였다. 자연스럽게 주변 바다를 많이 보게 된다. 유년 시절에 보았던 고향의 바다와 성인이 된 후 바라보는 바다는 정서적으로 아주 다르다.
바다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알 수 있는 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을 품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큰 사건(세월호)이 발생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다. 본인은 이 사건들이 다른 이슈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잊히는 걸 바라지 않으며 다른 사회적 이슈들이 이 사건을 덮는 걸 원치 않는다.
풍경 속의 바다는 어느 순간부터 풍경으로 읽히지 않는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빛깔은 검푸른 잿빛으로 보이고 잔잔한 파도는 큰 바위를 부숴버릴 정도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바다 한가운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인물은 뭔가 깊은 고독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 화석처럼 변해 버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앞의 그림자 없는 아이는 인물의 부재(不在)를 말해준다. 바다인지 땅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작은 배가 버려져 있다. 위태로운 절벽 위의 작은 인물은 거대한 용솟음이 몰아치는 검푸른 바다를 위태롭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흔한 풍경에 집중한다. 처음 마주하는 생경한 풍경들. 또는 수십 년을 보았던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풍경들 앞에 서 있다. 나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검은 바다와 전혀 아름답지 않은 버려진 풍경 앞에 서 있다. 내 몸은 특정 감각에 반응한다. 특정 시각에 반응한다. 기억이 존재하는 유년 시절부터 4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의 시기까지 자연스럽게 체득된 몸짓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몸으로 쓰는 풍경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흔한 풍경이 결코 풍경으로 읽히지 않고 어마어마한 사건을 품고 있는 장면으로 읽힌다.
나는 산책을 싫어한다. 아름답고 편한 고운 길을 싫어한다. 관조의 자세를 취하고 풍경을 바라보는 걸 싫어한다. 아직 내 눈에 낭만적인 풍경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둡고 쇠락해가는 버려진 풍경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아무 걱정 없이 유유자적 걷는 걸 경계해 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 결코 풍경으로 읽히지 않는 풍경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