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No-where / Jo Seon Kim

Somewhere, No-where / Jo Seon Kim
  • Post category:전시

Surrounded: 김지선 작가의 유기적 건축물로 느끼는 통합적 다감각

김지선의 작품은 그녀를 작업실 너머로 데려다 준다. 작가가 풍경에서 체득한 개인적인 경험은 특정한 장소에 대한 그녀만의 주관적인 인식을 내보임으로써 전환되며, 이내 캔버스 위에 가시화된다. 이것은 단순한 시각적 묘사를 초월한다. 이렇듯, 김지선은 작업 과정에 다양한 자극을 포함하여 다른 감각들을 동원하고,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한다. 숲의 소리, 대지의 향기, 그의 피부 위에 느껴지는 바람의 감각과 햇빛 그리고 수분이 그 예이다. 이러한 다양한 감각의 기억들이 만들어 낸 것은 역동적 범위의 투입되는 정보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 속을 돌아다니며 장면을 수집하는데, 그렇게 모은 각 장면의 다중적인 시점을 작가가 통합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은 단일한 순간보다는 풍경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담아낸 기억의 축적을 보여준다. 시간적이고 다감각적인 이와 같은 경험은 작가의 풍경에 부정할 수 없는 직접성(immediacy)을 부여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그리고 곧 공간 인식에 대한 공감각적 접근을 보여주는 외광파의 통찰력을 그의 작품에 넣는다.

김지선의 작품에 시각적인 장점을(potency) 실어주는 것이, 도리어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를 조금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실외의 맥락으로 실내의 공간을 그린다는 것이다. 김지선이 런던에 있는 슬레이드 아트스쿨 대학교의 초기 시절 때 고딕풍 인테리어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아마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건축에 대한 이러한 초기의 관심사는 오늘날에도 그녀의 작업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나무뿌리와 식물 줄기는 한때 그녀의 캔버스를 채웠던 건축 구조물을 대신한다. 작가의 초기작에서 보여지는 웅장한 실내의 느낌이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녀의 최근 작업은 한적한 장소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관을 아우르는 유기적인 건축물을 제안하고 있다. 이 작업들은 문자 그대로나 심리적으로나 손이 닿지 않는 바깥 세계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때 김지선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고딕 양식의 환상에서처럼, 이곳에서 관객은 경건한 자연 속에 고립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그림이 있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강제적인 원근법과 선택적인 공간 구성을 택하여 사용한다. 이것은 곧 그녀의 시선을 숲의 바닥 하부나 식물 캐노피 위로 제한하게 된다. 이따금 하늘의 모습은 지평선 위로 언뜻 보이거나 얼기설기 겹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지선의 작품에 있는 시선이 불가피하게 방해받기 때문에, 바로 앞의 전경을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제한된 시야로 인해 우리는 먼 곳에 놓여 있는 것을 막아버리는 자연 장벽인 나뭇잎과 식물의 빽빽한 층에 집중하게 된다. 김지선의 이러한 그림을 보는 것은 곧 푸른빛의 따뜻함을 느끼며 쉬는 것이고,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그 세상 속에 편안하게 자리 잡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어떤 것도 이 환경을 방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김지선의 무성한 풍경이 밀실 공포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녀의 작품은 화면을 넘어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며 갤러리 공간 그 자체를 포괄한다.

이러한 지각적 확장은 관객의 깊은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며, 이를 통해 관객은 그림의 경험적 혹은 발견적(heuristic) 기능을 알게 된다. 작가의 큰 규모의 신작 회화는 신체적인 의미로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여, 관객이 계속해서 자세를 각 캔버스에 맞추어 바꾸도록 만든다. 이런 식의 상호작용은, 작가가 그리는 장면과 작가 본인의 신체적 상호작용을 똑 닮게 보여주는 모방적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해주며 말이다. 이렇듯, 각 작품은 다른 세계에 조리개를 두곤 하는데, 이 세계는 작품의 특성인 평면성을 착각하게 만드는 예리한 유사성으로 채워진 것이다. 곧이어 이렇게 벌어진 틈새는, 작가와 관객이 경험의 특이점을 공유하는 만남의 공간을 형성한다.

김지선의 작품에 있는 중대한 요소는 바로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녀의 작은 캔버스 작품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매일 행하는 이 작업은, 그녀가 풍경에서 경험한 것들의 찰나적 인상을 옮기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이후에는 그녀의 큰 작품에 각개의 참고 자료로 작용한다. 김지선의 작업 흐름에 의도적으로 개념적 ‘거리 두기’를 더함으로써 그림은 표현된 것의 총체적 표현을 보여주게 된다. 그에 따라 작가의 회화적 시야가 추상에도 복사에도 의거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그녀의 풍경에 스며드는 뚜렷한 감수성을 재구성한 것이라는 이론적 틀을 제시해 준다. 작은 캔버스 하나하나가 특정한 개인적 기억과 연관한 서로 다른 감정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서로 모두 관련된 순간들 전체는 합해진 그림으로 완성된다. 하나로 좁혀지는 작가의 의식에 있는 복잡성을 반영하는 그런 합체된 그림으로 말이다.

김지선의 모든 최근작에는, 정서적인 기억이 회화적 표현과 강렬한 색채의 조합을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캔버스에서 뒤엉키는 다채로운 형태는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현재 진행형 풍경’을 시사한다. 섬세한 덩굴 모양, 두꺼운 곡선, 붓으로 툭툭 찍은 점과 기포처럼 부글부글 올라오는 피그먼트가 변화하는 빛의 상태 속에서 숨을 쉬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이렇게 균일하지 않은 붓놀림이 관찰 능력을 깨우는데, 이 능력은 작가의 직관적인 색채 사용을 통해 부각된다. 작가는 나무의 우거진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색채와 색조를 조정하여 시각적 예리함을 보여준다. 시각적 예리함에는 손길이 닿지 않은 그녀의 풍경을 일대 장관으로 표현해버리는 원초적인 힘이 있다. 쌀쌀한 듯 상쾌한 봄바람, 얼룩덜룩한 숲 바닥, 자유로운 수풀, 혹은 안개 낀 산 중턱의 초원. 이것은 김지선의 눈으로 바라본 장면이다. “어디론가”부터 온 다양한 장면에는 손에 만져질 듯한 장소가 되게 하는 묘한 활력이 존재한다.

Andy St. Louis

원출처 : http://www.leeeugeangallery.com/exhibitions/introduction/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