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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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그렇듯
A day like any other day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지독히 사랑하고, 미워했던 아빠를 차가운 땅에 묻어두고 막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는 눈물과 땀 콧물을 쏟고 휴지가 모자라 얼굴이며 옷이며 손이며 모두 범벅이 되었던 때. 이렇게 괴로운 일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창밖의 어스름한 노을을 바라봤었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첫 기억이다.

나는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고, 친구를 만나 배가 아프도록 웃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몇 번 더 보내야만 했다. 어떤 하루는 기도를 했고, 어떤 하루는 향을 피워 애도했다. 그렇게 코를 풀던 휴지로 눈물을 닦고 때때로 신나게 웃으면서 살아가면 되는 걸까. 나는 나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 삶이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일곱시면 안락한 방 안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핸드폰 알람이 스무 번 정도 울리고나면 방문 밖으로 함께 사는 엄마의 설거지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씻고 그날 입을 옷들을 골랐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챙겼다. 점심에는 졸았다. 따뜻한 햇살 때문에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러고 나면 금세 해가 저물어갔다. 저녁에는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나 진저 레몬티를 마셨다. 그럼 용웅에게 전화가 오거나 인애가 가끔 귀여운 사진들을 같이 보자고 보내오곤 했다. 나의 가장 오랜 친구 윤이는 답장이 없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 말고 더 오래전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내가 25년간 살았던 집, 그 집에 있던 화단과 함께 살았던 나무들. 매일 보아서 익숙했던 것들은 더 이상 찾아보고 알아볼 수 없을 때 쯤에서야 비로소 그립고 보고 싶어졌다. 살다 보면 고통과 기쁨이 뒤범벅 되고, 그게 이상하게 아름답고, 지나가면 두 번은 돌아오지 않는 매일과, 그 매일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 이 모든 게 삶을 이루는 일부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많은 걸 놓치고 또 그만큼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택한 방법은 되도록 많이 쓰고, 남기며, 모으는 것이었다. 집과 일터, 때가 되면 바뀌는 창밖의 풍경, 가족과 친구들이 남긴 것.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친밀하고도 낯선,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매일이 쌓이고 쌓여 삶이 흘러간다는 것을 믿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나눌 수 있지는 않을까. 내가 퉁퉁 부은 눈으로 그 노을 속에서 본 것. 혼자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 걸으면서 느낀 것. 길고 짧은 대화들과 다시 돌아올 일 없어서 아름다웠던 시간들. 아직 말해지지 않은 비밀들 까지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늘상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주변이 고요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춥고 늦은 밤에도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가지만, 나는 매일 내가 살아 있어서 가능한 일들을 하고 싶다.

전시 일시
2021. 2.25(목) – 3.14(일)
14~20시

전시 장소
17717,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7-17

작가
지혜

포스터 디자인
구보명

원출처 : http://17717.co.kr/%ec%a7%80%ed%98%9c-%ea%b0%9c%ec%9d%b8%ec%a0%84-%eb%a7%a4%ec%9d%bc%ec%9d%b4-%ea%b7%b8%eb%a0%87%eb%93%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