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명옥헌 원림 등 9개 별서정원 소유자·변화과정 등 확인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명승 지정 별서정원에 대한 역사성 검토를 마쳤다. 지난해 예천 선몽대 일원을 비롯한 11개소에 이어 올해에는 담양 명옥헌 원림 등 9개소 정원의 만든 이와 소유자, 정원의 변화과정, 정원 명칭의 유래 등을 고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새롭게 밝혀냈다.
먼저,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 광주 환벽당 원림 3개소에 대해 정원이 만들어진 시기와 초기 형태를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중종 21년(1526) 충재(沖齋) 권벌(權橃, 1478~1548)이 바위 위에 지은 청암정(靑巖亭)과 그의 아들인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 1518~1592)가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석천계곡에 지은 석천정(石泉亭)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이 위치한 유곡(酉谷)마을은 1380년 권벌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권벌이 중종 15년(1520) 터를 잡은 곳임을 확인하였다. ▲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은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가 은거하며 억새로 만든 정자를 1872년 재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전시서가 은거했던 곳 서쪽에 그의 후손인 전재택(全在澤) 등이 고종 9년(1872) 새로 세운 정자임을 밝혀냈다. ▲ 광주 환벽당 원림 일원은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 환벽당은 그의 부친 김후(金珝)의 정자를 김윤제가 중수하여 건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원은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화재나 목부재의 부식 등으로 중수나 중건 등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형태뿐만 아니라 이후 정원의 형태나 위치가 변경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정원의 역사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번에 정원의 초기형태뿐만 아니라 중수나 중건이 새롭게 확인된 사례는 담양 명옥헌 원림과 안동 만휴정 원림, 밀양 월연대 일원, 화순 임대정 원림 4개소다.
▲ 담양 명옥헌 원림을 만든 이는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3~1623)와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으로 혼용되어 알려져 왔다. 이번 역사성 검토를 통해 오희도가 은거했던 망재(忘齋)라는 이름의 서재 인근에 오이정이 조성한 별서임을 확인하였으며, 이후 영조 25년(1748) 오이정의 손자 오대경(吳大經, 1689∼1761)이 현감 재직 시절 퇴락한 명옥헌을 중수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 안동 만휴정 원림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은거하며 경영한 쌍청헌(雙淸軒) 터에 위치한 정자로, 영조 46년(1770) 동도(東道) 김덕일(金德一, 1734∼1794)이 중수한 사실을 밝혀냈다. ▲ 밀양 월연대 일원은 조선 중종 때 문신 월연(月淵) 이태(李迨, 1483∼1536)가 관직에서 물러나 쌍경당(雙鏡堂)과 월연대(月淵臺)를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쌍경당을 숙종 23년(1697)에 중수하고 고종 3년(1866) 이태의 11대손 이종술(李鍾述)이 월연대를 중수했음을 확인하였다. ▲ 화순 임대정 원림은 16세기 후반 고반(考槃) 남언기(南彦紀)가 조성한 고반원(考槃園)의 수륜대(垂綸臺) 옛 터에 철종 13년(1862)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이 건립한 정자이다. 임대정은 본래 풀이나 갈대 따위로 지붕을 인 정자인 한 칸의 초정(草亭)으로 지어졌으나 시간이 지나 허물어졌고, 민주현의 손자 민대호(閔大鎬, 1860~1932) 등이 1922년 정자를 중수하면서 2칸을 더 짓고 기와를 올려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 현감: 조선 때, 작은 현(縣)의 으뜸 벼슬
한편, 거창 용암정 일원은 중수사실 외에도 별서정원의 명승적 가치를 담은 기록을 추가 확인했다. 용암정(龍巖亭)은 순조 원년(1801) 용암(龍巖) 임석형(林碩馨, 1751∼1816)이 조부와 부친을 따라 노닐던 용암 위에 세운 정자로, 고종 원년(1864) 증손 임수학(林秀學)이 중수하였다.
* 안의삼동(安義三洞): 조선후기 안의현 일대 화림동(花林洞), 심진동(尋眞洞), 원학동(猿鶴洞)을 아우르는 곳으로 당대 문인들에게 영남 지방 최고의 명승으로 꼽혔음
이외에 강진 백운동 원림은 이담로(李聃老, 1627~?)가 정원을 만든 시기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고시(古詩)를 통해 1678년 이전 만들어진 정원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담로의 6대손인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이 정약용, 초의선사와 교류하며 차(茶)를 만들고 즐긴 기록 등을 통해 국내 차 문화 산실로서의 가치를 추가하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명승 별서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 검토 결과에 따라 고시문과 국가문화유산포털에 게재한 내용을 정정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지정되는 명승 및 별서정원에 대해서도 고문헌 고증 등 역사성 검토를 실시하여, 명승으로 지정된 모든 별서정원의 진정성 확립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