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2016 부산>
2017-09-16-2017-09-29
임재천
■ 전시 기획 의도
대안 공간 SPACE22에서 10년간 총 아홉 차례로 예정된, <50+1> 프로젝트의 세 번째 사진전인 <50+1, 2016 부산> 임재천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2016년 8월부터 2017년 4월에 이르기까지 임재천이 발견하고 촬영한 부산의 속살을 50명의 후원자들이 고른 50점의 사진과 더불어 공개하는 전시입니다.
<50+1> 프로젝트는 사진가 임재천과 50명의 후원자들이 이루는 협업을 일컫습니다. 즉, 사진가에게 1백만 원씩을 후원해줄 50명이 성원되면 그때로부터 사진가는 후원금을 받아 한 달에 10일씩, 1년 120일 동안 한국의 6개 도 3개 시 중 한 곳을 정해 사진작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1년 뒤, 사진가가 고른 200장의 A컷을 다시 눈빛출판사에서 150장으로 간추리고 이를 50명의 후원자들에게 참여한 순서대로 보냅니다. 후원자들은 이 가운데서 각자 소장하고 싶은 1컷씩의 사진을 고르게 되며, 이렇게 선택되는 50점으로 전시를 하게 됩니다.
즉, 사진가는 경제적 문제없이 가족 부양을 하는 동시에 촬영을 책임지고, 후원자들은 사진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에 더해 향후 전시 사진 셀렉트를 책임지는 방식의 크라우드 펀딩이자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1> 3차 프로젝트의 촬영지는 부산광역시입니다. 지난 2016년 7월 16일, 사진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50+1, 2016 부산> 프로젝트의 후원자 모집을 시작해 이후 8월 9일에 50명이 모두 성원이 되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을 하루 평균 20km씩 걸어 다니며 촬영했습니다.
8월 22일부터 시작해 허리 디스크 발병으로 인해 나머지 3개월을 촬영할 수 없게 된 2017년 4월 10일까지 9개월 간 90일에 걸쳐 6천3백여 컷을 촬영했습니다. 이후 사진가와 출판사가 최종 150컷을 골랐고, 이 중에서 후원자들이 고른 50점의 사진들로 이뤄진 전시가 바로 <50+1, 2016 부산>입니다. 임재천의 사진 속에서 아련히 빛나는 부산 사람들의 삶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부산이란 도시를 다시금 발견하게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0+1, 2016 부산> 전시는 사진전이 완료되면 해당 사진을 전시되었던 액자와 더불어 1/9번의 에디션으로 50명의 후원자들에게 각각 전달됩니다. 이는 <50+1>프로젝트의 완결이자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50+1>프로젝트는 1회성이 아니라, 6개 도와 3개 시를 450명의 후원자와 함께 10년에 걸쳐 사진으로 기록하는 국내 최초, 최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전업사진가가 정부 기관이나 기업의 지원 사업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페이스북을 통한 일반인들의 크라우드 펀딩에 힘입어 사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도전의 장이자 꿈의 실현이라 할 수 있는 <50+1> 프로젝트, 그 세 번째 결과물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아울러 전시 오프닝 날인 2017년 9월 16일에 「한국의 발견 03 – 부산광역시」임재천 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동시에 발간됩니다. 참고로 눈빛출판사의 「한국의 발견」 시리즈는 <50+1> 프로젝트의 진행과 더불어 전 9권으로 발간 예정되어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초등 4학년 때였다. 쉽사리 떠지지 않는 눈을 끔뻑이며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목덜미로 스며드는 12월 꼭두새벽의 한기가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만들었다. 꼭 맞잡았던 어머니 손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던 그 때, 부산진역 광장 한편에서 “재첩국 사이소”하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수은등 아래서 희미하게 빛나던 함석 들통 뚜껑이 열리자 몽글몽글 김이 피어올랐고,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플라스틱 그릇엔 뽀얀 국물과 더불어 제법 통통한 재첩 살이 가득했다.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듯 연거푸 들이켜자 그때서야 눈이 번쩍 떠지며 얼핏 다리 힘이 풀렸던 기억이 난다. 이 때문인지 나는 오랜 시간동안 부산이란 도시의 첫 인상을 재첩국 맛으로 기억해왔다.
세 번째 <50+1>프로젝트의 촬영지를 부산으로 정한 까닭은 홀로 도시를 마주하는 동시에 옛 기억 속 장소를 더듬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40년이란 세월은 무심하기가 손을 떠난 풍선 같은 것이어서 옛 기억을 되살릴만한 단서는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산진역은 이미 2005년에 여객 취급을 중단하고 화물 전용역이 된데다 신역사로 탈바꿈해 있었다. 다행히도 옛 역사가 그 자리에 서있었지만 어디에서도 재첩국의 온기는 찾을 수 없었다.
14년 전 자갈치와 영도를 오가며 출퇴근길 버스 노릇을 하던 통통배도 사라진지 오래였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자취가 남아있던 용호농장은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변모해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하물며 부산을 오갔던 9개월 동안만 해도 자갈치공판장이 새로운 곳으로 장소를 옮겼고, 좌천동 매축지를 오가는 터널이 확장 공사를 한데다 그 옆에 또 다른 터널이 하나 더 생겨날 정도로 부산엔 수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옛것이 변함없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과욕일는지도 모른다. 다만 전철과 버스로 연결된 부산의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이용해 수많은 길을 걸어 다니며 촬영할 수 있었다는 점이 소기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2016년 8월 22일 첫 촬영을 시작한 때로부터 허리 디스크 발병으로 인해 더 이상 촬영을 할 수 없게 된 2017년 4월 10일까지 9개월, 90일에 걸쳐 부산 전역을 다녔다. 15개 구와 1개 군, 그 아래로 253개 동·리와 3개 읍, 2개 면이 있는 부산에서 단연코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부산공동어시장을 포함한 자갈치시장과 영도, 그리고 산복도로였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동행자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다닐 때 외에는 거의 하루 평균 20킬로미터씩 걸어 다니며 촬영을 했다. 사실 부산은 걷지 않고서는 쉽사리 속내를 볼 수 없는 도시였다.
고행에 가까운 나날이 이어졌지만 많이 걸어 다닐수록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조금씩 다가왔고 마음에 쌓이기 시작했다. 촘촘히, 겹겹이, 그리고 꿋꿋이란 부사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이것은 분명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었다. 또한 1980년 중반, <뿌리깊은나무>에서 펴낸 「한국의 발견 – 부산」20페이지 열셋째 줄에 적힌 대로, ‘산을 등에 업고 바다를 가슴에 안은’ 부산을 재발견하는 순간이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의 한자 표기는 釜山이다. 가마 부(釜)에 뫼 산(山), 즉 가마솥 모양의 산을 의미하며, 순우리말로는 ‘가마뫼’다. 부산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의 옛 이름이 ‘가마뫼’다. 멀리서 보면 산 모양새가 가마솥을 닮았다고 해서 조선초기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조차도 산과 산으로 이뤄졌을 정도로 부산은 도심 안에 산이 많다. 인구 350만 명 가운데 100만여 명이 그곳에 깃들어 살고 있으며, 또 그 사람들을 위한 산복도로(山腹道路)가 몇 갈래로 나뉘어져 산 위, 아래를 잇고 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산복도로는 일제강점기의 개항 때부터 이방인이 모여들기 시작한 부산의 특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온 외지인들은 산지를 따라 올라가며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부산에 몰려든 피란민들은 기존 정착지보다 더 위쪽까지 영세한 판자촌 마을을 형성했고, 부두 노동자와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피란민들이 대거 부산을 떠났고 그 자리를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생겨난 가난한 이농 인구가 다시 채우게 된다. 1964년 현 동구 초량동에서 처음으로 산복도로가 개통되어 대중교통이 등장하게 되자 산 위 주거지와 산 아래 경제 활동 공간을 잇는 가교가 되어 마을 환경을 변화시키게 되었다. 이후 산복도로 아래 지역은 더 이상 산동네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집과 건물로 대체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망양로와 진남로, 엄광로, 천마산로, 옥녀봉 등이 부산의 대표적인 원 도심 산복도로다. 이 가운데 망양로는 서구 동대신동, 중구 보수동, 대청동, 영주동, 동구 초량동, 수정동, 좌천동, 범일동, 부산진구 범천동을 잇는다. 수개월에 걸쳐 이 지역을 다니다 보니 각 동네의 주거 형태가 자갈치시장과 부산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자갈치에서 가까운 동네는 한정된 공간에 비해 인구가 과밀하여 집과 집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운데 비해 자갈치에서 멀어질수록 숨통이 트이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했던 3개의 부사 -촘촘히, 겹겹이, 꿋꿋이-는 부산 사람들이 삶을 지속하고 이어가는 인생 역정의 또 다른 표현이자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일구고 있는 부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제주도,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이번 부산 촬영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과 자각으로 점철되는 시간이었다. 이토록 소중하고 값진 기회를 선사해주신 <50+1, 2016 부산>프로젝트의 50명 후원자 분들에게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서 선뜻 1년간의 촬영을 허락해준 <부산공동어시장> 관계자 분들에 더해서,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나를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별이 다반사인 항구도시가 아니라 땅 위에서 삶이 별처럼 빛나는 도시로 부산을 탈바꿈시킨 모든 아지매와 아재들에게 이 사진전을 바친다.
2017년 9월
임재천
*50+1, 2016 부산 후원자 명단 (가나다 순)
강주형, 고정미, 김대봉, 김동현, 김선형, 김순정, 김정선, 김철회, 김혜경, 문재원,
박내성, 박은경, 박철세, 백중기, 석정훈, 신미진, 안동규, 오재우, 오창석, 오혜련,
유석묵, 윤대진, 윤석보, 윤현수, 이광숙, 이상규, 이순구, 이완재, 이원형, 이유홍,
이정연, 이정희, 이제국, 이혜숙, 장은미, 정문균, 정진호, 정창욱, 정한나, 조영신,
주희정, 진모영, 채 희, 최정균, 최주식, 하종완, 한은희, 한지혜, 허 진, 황종환.
■ 작가약력
임재천(任在天, 1967~)은 경북 의성 탑리 출생으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사라지고 변해 가는 한국 풍경의 기록에 무게를 두고,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촬영해 오고 있다.
초대전 <한국의 재발견>(2016, 희수), 개인전 <강원도>(2016, 스페이스22), <제주도>(2015, 스페이스22)와 특별전 <낙동강>(2008, 국립김해박물관)을 가진 바 있다.
사진집으로 「한국의 재발견」(2013, 눈빛),「소양호 속 품걸리」(2014, 눈빛),「한국의 발견01-제주도」(2015, 눈빛),「한국의 발견02-강원도」(2016, 눈빛)와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2008, 문학동네) 외에 공저가 여러 권 있다.